항목 ID | GC01702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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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題公州錦江樓 |
영어의미역 | Jeong Dojeon's Poem from Geumgangnu Pavillion in Gongju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백원철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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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정도전(鄭道傳)[미상~1398] |
창작연도/발표연도 | 1377년 |
[정의]
1377년(우왕 3) 정도전이 유배 생활을 마치고 옛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공주의 금강루에 올라 지은 한시.
[개설]
「제공주금강루」는 작자의 문집인 『삼봉집(三峰集)』 및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 17, 공주조에 실려 있다. 정도전이 1375년(우왕 원년)에 친원정책을 반대하여 나주로 유배되었다가, 2년 후에 해배되어 상경하는 길에 금강루에 올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감회를 노래하였다.
[구성]
장편 7언 고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고난을 겪은 고인들의 처지를 상기하여 읊고, 후반부에서는 작자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읊었다.
[내용]
시의 제목은 「제공주금강루」라고 되어 있으나, 경치를 전혀 언급치 아니한 점이 특이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대는 보지 않았나/ 가의는 굴원 조상의 글 상수에 던졌고/ 이태백은 취하여 황학루 시 지은 것을/ 생존 시의 불행은 근심거리가 못 되나니/ 뛰어난 의지는 늠름하게 역사에 전하리라/ 그대는 또 보지 않았나/ 병든 몸 3년 동안 남방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며 또한 금강 가에 다다른 것을/ 다만 보노라니 강물만 유유히 흐르는데/ 어찌 알리, 세월 역시 멈추지 않음을/ 이 몸은 이미 가을 구름과 함께 떠도나니/ 공명과 부귀 다시 어찌 구하랴/ 옛 일 생각에 한 번 길게 탄식하노니/ 노랫소리 세차고 바람도 소슬하게 부는데/ 홀연히 날아오는 한 쌍의 흰 갈매기로다.(君不見/賈傅投書湘水流 翰林醉賦黃鶴樓 生前轗軻無足憂 逸意凜凜橫千秋 又不見/病夫三年滯炎州 歸來又到錦江頭 但見江水去悠悠 那知歲月亦不留 此身已與秋雲浮 功名富貴復何求 感今思古一長吁 歌聲激烈風颼颼 忽有飛來雙白鷗)”
“그대는 보지 않았나[君不見]” 이하 4구(전반부)에서는, 뜻을 펴지 못하고 좌천되었거나 쫓겨나 방황하였던 옛 사람들, 즉 초나라의 굴원과 한나라의 가의와 당나라의 이백이 겪었던 고난을 거론하며, 오히려 그들의 불굴의 높은 뜻을 찬양하였다. “그대는 또 보지 않았나[又不見]” 이하 후반부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그들에게 비유하며, 스스로도 부귀공명에 연연해 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짐하고 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곳에는 박팽년과 이승소의 「금강루(錦江樓)」라는 시도 함께 실려 있다. 누의 위치는 “금강 남쪽 언덕에 있다.”고 하였는데, 후대 어느 때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징]
형식상 7언 고시, 또는 악부체 고시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매구 운을 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의의와 평가]
흔히 누정(樓亭)에 올라 지은 시는 주변의 승경을 읊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공주금강루」에는 고시체의 형식을 빌어 생전의 곤궁쯤이야 근심할 것도 못 되며 이제 다시 공명이나 부귀를 구하지 않겠다는 정도전의 강렬한 의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얻은 마음의 여유는 천추에도 남을 만한 빼어남을 늠름하게 간직하고 있는 적극적인 여유를 알게 하는 비장미로 표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