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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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관동 의병의 삼척 전투. 1896년 4월 삼척에서 벌어진 관동 의병과 관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일제의 침략에 따른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대하여 발생하였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뒤따른 제도의 변혁과 일제 침략에 항거하여 척사위정(斥邪衛正)의 민족 사상과 국권 수호의 구국 이념을 강령으로 하여 전국에서 의병이 궐기하자 삼척에서도 창의장(倡義將) 김헌경[1851~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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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정선이 죽서루를 그린 진경산수화.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은 겸재정선(鄭敾)[1676~1759]이 65세 때 그린 관동 지역 명승과 관련된 진경산수화이다. 이 첩에는 정자연, 수태사 동굴, 총석정, 삼일호, 해산정, 천불암, 청간정, 시중대, 월송정, 망양정, 죽서루가 그려져 있다. 죽서루 그림은 오십천 건너편에서 죽서루를 바라본 구도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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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의 하나로, 강원도 삼척시오십천 절벽 위에 자리한 누정. 삼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죽서루이다. 오십천 절벽 위에 자리한 보물 제213호 죽서루는 우리나라 대표 누각이기에 삼척의 상징이 되었다. 죽서루는 건물 자체의 오래된 역사나 웅장함뿐만 아니라 주변의 뛰어난 경관으로 말미암아 사시사철 시인과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풍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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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해안 지역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 관동은 강원도동해안 지역을 가리키며, 예부터 동해 바다, 하얀 모래밭, 울창한 소나무 숲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관동팔경은 이들 뛰어난 경관 속에 있는 누대와 정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여덟 곳을 지칭한다. 관동팔경의 선정 기준은 사람이나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달랐다. 고려 말 안축(安軸)[12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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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조선시대 궁궐을 짓기 위해 보호하고 관리했던 황장목과 황장목을 보호, 관리하기 위해 세운 비석. 19세기 후반에 지은 김종산(金宗山)의 『척주지(陟州誌)』 권 2, 산천조(山川條)에는 삼척 지방의 황장봉산을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도『강원도지(江原道誌)』[1940년] 권 3, 토산(土産), 삼척조(三陟條)에는 ‘교곡산에서 신라시대 황장목을 벌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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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금강사군첩』에 있는 죽서루 그림. 정조가 관동 지역의 명승지를 직접 갈 수가 없어서 김홍도로 하여금 관동 지역의 명승지를 둘러보고 직접 그림을 그려 오도록 하였다. 이 죽서루 그림 역시 죽서루에 가고 싶지만 궁궐을 떠나기가 어려운 정조의 명에 따라 김홍도가 그린 그림이다. 그림은 죽서루 뒤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듯이 보이는 산과 빙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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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민용호(閔龍鎬)[1869~1922]의 자는 문현(文賢)이다. 호는 복재(復齋)이며, 일명 진호(晉鎬)로 불렸다. 고려 말 충신 두문동현인(杜門洞賢人) 민안부(閔安富)의 후손이며, 현와공(弦窩公)민치겸(閔致謙)의 5남 가운데 장남이다. 민치우(閔致禹)에게 입양되어 명성황후와는 14촌 남매간이 된다. 민용호는 18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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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천은사의 창건 설화·연혁·중수 과정 등이 기록된 비석. 삼척 천은사 기실비는 돌머들[독머들, 석탄동]에 있다. 돌머들은 방고개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천은사 기실비가 있는 곳에서 직진하면 천은사이고, 오른쪽의 흥태골로 들어서면 지시고개를 넘어 옛 삼화사터로 갈 수 있다. 비석에는 천은사의 창건 설화와 연혁, 1921년까지의 중수 과정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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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1길 24[산양리 843]에 있는 산양서원의 내력을 기록하여 세운 비. 삼척산양서원 묘정비는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1길 24[산양리 843]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척산양서원의 내력 전반을 기록하여 서원 안에 세운 비석이다. 산양서원 묘정비는 황희의 선정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세운 소공대와 관련한 내용, 황희를 기리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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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노곡리 산67에 있는 비. 강원도 삼척시 임원리에서 원덕읍을 오가는 와현 정상에 1423년 관동 지방 흉년 극복에 큰 공을 세운 황희를 기리기 위하여 삼척 지역 주민들이 세운 소공대가 후대에 와서 무너진 것을 황희의 후손 황맹헌이 비석 형태로 세운 것이 소공대비이다. 1516년(중종 11) 황희의 4대손 황맹헌이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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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동안 삼척 지역의 치소(治所)가 위치하여 있던 읍성.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의 시내 중심가를 둘러싼 구릉지의 자연 지형을 따라 곡선으로 쌓은 평산성이다. 서쪽 절벽 위에는 죽서루가 오십천가에 있다. 남쪽은 평지이지만 북·동쪽은 다소 높은 구릉지로, 천주교회가 있다. 고려시대에 축조되어 여러 차례 개축을 거친 읍성으로, 최근의 발굴 조사에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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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노곡리에 위치한 고개. 소공령(召公嶺)은 해발고도 224m로, 1916년 7번 국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노곡리를 연결하던 고개이다. 소공령은 본래 와현(瓦峴)이라고 불렸는데, 소공령 고개를 넘어야만 인마(人馬)가 내왕할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후 황희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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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항일 단체 신간회의 삼척 지역 지회. 신간회 삼척지회는 항일 민족 운동 단체인 신간회의 삼척 지역 지회로 1928년 3월에 조직되었다.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 유입으로 독립 운동이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으로 갈라지면서 민족 운동 전선에 갈등이 생기게 되자 단일화된 민족 운동이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민족유일당 운동(民族唯一黨 運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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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을 소재로 하여 작품을 남긴 고려 후기 문신. 한국문학사에서 ‘경기체가’인 「관동별곡」[삼척시 경치와 풍경을 표현]과 「죽계별곡」[고향 죽계의 풍경 표현]의 저자이다.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이다. 할아버지는 안희서(安希諝), 아버지는 안석(安碩)이다. 어머니는 안성기(安成器)의 딸이다. 고려 후기 신흥유학자로 탁월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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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영장 홍우보(洪雨輔)가 울릉도에 몰래 사람을 보내 인삼을 채취한 사건. 1769년 삼척부사 서노수(徐魯修)는 삼척영장 홍우보가 몰래 사람을 울릉도에 보내 인삼을 캔 사실을 밝혀 냈다. 그러나 장령 원계영이 울릉도 인삼 잠채는 홍우보의 단독 소행이 아니라 강원감사 홍명한(洪名漢)[1724~1774]의 주도 아래 조직 차원에서 이루어진 계획 범행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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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승휴가 삼척 지역에 건립한 모옥의 당호. 이승휴는 1280년에 파직 당하여 삼척두타산 아래로 돌아온 후 구산 골짜기 용계 서쪽에다 모옥을 짓고는 용안당이라 하였다. 여기서 이승휴는 『제왕운기』, 『빈왕록』, 『내전록』 등을 저술하였다. 이승휴(李承休)[1224~1300]는 자가 휴휴(休休)이고 호는 동안거사(動安居士)로, 경산부(京山府) 가리현(加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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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서화가. 이희수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지삼(芝三)이며, 호는 소남(少南) 및 경지당(景止堂)이다. 평안남도 상원군(祥原郡) 출신이다.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1786~1856]와 쌍벽을 이루던 눌인(訥人)조광진(曺匡振)[1772~1840]에게서 20여 년 동안 글씨를 배워 평양을 중심으로 관서 지역을 대표하는 서화가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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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동 8경의 하나인 죽서루와 관련하여 경관 등을 그린 회화 작품들. 조선시대 후기 삼척에 있는 죽서루와 주변의 풍광을 실경산수화로 그린 작품들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국립춘천박물관,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 삼척시립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 다양한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동십경』 가운데 죽서루 그림 1745년(영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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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죽서루 주변 바위와 오십천 주변 절벽에 새겨져 있는 글씨. 고려 후기에 건립되어 조선시대 삼척도호부 관아 건축물의 하나로 사용된 죽서루는 주변의 오십천 절벽 일대와 함께 송강정철(鄭澈)[1536~1593]의 「관동별곡(關東別曲)」에 소개되면서 예부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꼽히며, 삼척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삼척의 젖줄인 오십천에서 으뜸 절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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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홍계하의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부친은 홍중겸이다. 홍계하(洪啓夏)는 학행(學行)이 탁월하여 관동의 부자(夫子)라고 불리었다. 홍계하는 부모를 위하는 정성 또한 지극하였다고 한다. 시묘살이를 하는 3년 동안에는 죽을 먹으며 예를 다하였다고 한다. 모친이 병을 얻자 홍계하는 기도를 하였으며, 지극함이 미쳐 호랑이가 물어다 준 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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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의 문인. 홍응부(洪應溥)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대이(大而), 호는 송제(松齊)이다. 봉사(奉事) 홍연해(洪㶌海)의 아들이다. 홍응부는 어려서부터 현자를 사모하고 의리를 강론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또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바른 것을 지키는 데 흔들림이 없었다. 정묘호란 때는 관동 지방에서 치서(馳書)하여 여러 차례 강홍립의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