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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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鶴翼洞集娼村 |
이칭/별칭 | 끽동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안홍민 |
성격 | 집창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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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학익동 집창촌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414 일대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위치하였던 집창촌.
[개설]
집창촌이란 다수의 성매매 업소가 집결한 곳으로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전까지는 서울특별시의 청량리, 미아리, 용산역 부근 등을 비롯해 전국의 주요 집창촌은 성매매가 인정되는 공간으로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인식되었다. 인천광역시의 경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414번지 일대가 속칭 ‘끽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인천의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로 알려져 있었다.
[건립 경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414번지 일대에는 1960년대부터 성매매 업소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 시원을 살펴보면 6·25 전쟁 시기 인근에 외국 군인이 주둔하면서 집창촌이 일부 형성되었고, 군인들의 철수 이후에도 업소들이 남아 1960년대 이후 내국인을 상대로 성매매 영업을 하였다고 한다. 학익동 집창촌은 계속하여 업소와 종사 여성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인천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변천]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시행 전 학익동 집창촌의 성매매 업소는 50곳, 종사 여성은 200여 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2004년 3월 인천광역시 남구 의회에서 ‘학익동 특정 지역 폐쇄안’이 통과되고, 같은 해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학익동 집창촌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2005년부터 학익동 집창촌 업소 건물에 대한 철거가 시작되어 시유지에 위치했던 업소가 철거되었지만, 사유지에 위치했던 일부 업소는 인천광역시의 집창촌 폐쇄와 도시 개발 방침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영업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상 문제 등이 해결되면서 2007년 학익동 집창촌에 대한 철거가 완전하게 이루어졌다.
[현황]
2012년 현재 학익동 집창촌 지역은 완전 철거된 후 새롭게 도시 개발이 이루어져 풍림 액슬루 타워와 공원, 도로 등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