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미추홀구문화대전 > 미추홀구향토문화백과 > 삶의 주체(성씨·인물) > 성씨·세거지 >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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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에서 성씨(姓氏)가 발생한 근원은 고대 중국의 성씨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왕족을 중심으로 다른 씨족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호칭이 성(姓)으로 나타난 것인데, 처음에는 왕실 내지 귀족, 고급 관료층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개국(開國)과 국가 변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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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세거하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사람들이 모여 이룬 마을. 집성촌(集姓村)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마을을 가리킨다. 집성촌은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 이미 형성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촌락을 형성한 것은 17세기 이후로 보인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경우에는 인천 이씨, 부평 이씨 등 인천을 본관으로 둔 성씨들이 고려 시대부터 등장하므로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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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김종(金宗)을 입향조(立鄕祖)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과 주안동에 세거하던 성씨.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더불어 김씨의 2대 주류를 이루는 대보공(大甫公) 알지계(閼智系) 가운데서도 그 대종을 이루는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파계(派系)가 복잡다. 은열공파(殷說公派), 태사공파(太師公派),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 영분공파(永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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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목(李希穆)을 시조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세거 성씨. 부평 이씨(富平李氏)는 이희목을 시조로 하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문학동·학익동·주안동·용현동 등지에 세거하였던 성씨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던 이세주(李世冑),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원도(猿島)[인천광역시 중구에 있었던 섬. 지금은 육지와의 사이가 매립되었다.]에 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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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인천 지역에 있었던 세거 성씨. 인천 문씨(仁川 門氏)는 고려 시대부터 인천 지방에서 세거해 왔던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시대에 감문위 낭장(監門衛郞將)을 지낸 문필대(門必大)로 전하고 있으며, 1930년 국세 조사 통계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사라진 성씨이다. 강희맹(姜希孟)의 『사숙재집(私淑齋集)』 「인천부승호벽상기(仁川府陞號壁上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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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허겸(李許謙)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인천 지역의 세거 성씨. 인천 이씨(仁川 李氏)는 이허겸을 시조로 하여 고려 시대부터 인천광역시 지역에 세거하던 성씨이다. 고려 시대 문종(文宗)에서 인종(仁宗)까지 7대에 걸쳐 5명의 태후(太后)와 5명의 왕후(王后)를 배출하여 인천의 읍호(邑號) 승강(昇降)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세조(世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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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선무(蔡先茂)를 시조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과 학익동, 문학동에 세거하던 성씨. 인천 채씨(仁川 蔡氏)는 채선무를 시조(始祖)로 하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학익동·문학동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였던 성씨이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의 한국 역대 인물 종합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인천 채씨의 고려 시대 문과 합격자로는 채보문(蔡寶文)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무과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