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3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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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多所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 |
집필자 | 김영준 |
성격 | 고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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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문헌 | 여지도서 |
폐지 시기/일시 | 1914년 - 인천부 다소면과 주안면이 경기도 부천군 다주면으로 통합 |
비정 지역 | 다소면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
비정 지역 | 다소면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
비정 지역 | 다소면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
비정 지역 | 다소면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이 속해 있었던 조선 시대의 면.
[명칭 유래]
다소면(多所面)은 ‘농사를 짓는 곳이라 물이 많다’는 뜻의 ‘다수(多水)’에서 비롯됐다는 등의 해석이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형성 및 변천]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 다소면이 생긴 것은 조선 시대 면리제가 시행되면서부터이다. 영조(英祖) 때의 『여지 도서(輿地 圖書)』 ‘인천도호부’에 의하면 다소면은 인천부의 10개 면 가운데 하나로 소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 때, 1914년 3월 부령 제111호에 따라서 경기도 인천부의 일부와 경기도 부평군 전체, 경기도 남양군 일부, 경기도 강화군 도서 일부를 통합해 경기도 부천군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인천부 다소면과 주안면(朱雁面)이 합쳐져 경기도 부천군 다주면(多朱面)이 생겼다. 경기도 부천군 다주면은 1967년 경기도 인천시에 ‘구(區)’가 생기면서 해체되었다.
[위치 비정/ 행정 구역상의 구분]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조선 시대에 인천부 부내면(府內面)과 다소면에 속해 있었다. 부내면은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이 속해 있었으며, 다소면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과 인천광역시 동구, 인천광역시 중구 일대를 포함하고 있었다.
[관련 기록]
『국역 승정원일기』 고종 22년 3월 11일 조에 의하면 “사알(司謁)을 통해 구전으로 하교하기를, ‘인천(仁川) 다소면(多所面) 송림리(松林里)에서 농무(農務)를 창건하였다고 하니, 매우 가상하다. 권농(勸農)하는 도리에 있어 예사롭게 처리해서는 안 되니, 도신으로 하여금 농고(農鼓) 1좌(坐)를 내려 주게 하라’ 하였다.”라는 농업 관련 기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