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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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府內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영준 |
성격 | 고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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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03년 8월 - 부내면이 제물포 지구로 편입 |
비정 지역 | 부내면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선학동 |
비정 지역 | 부내면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과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이 소속되었던 조선 시대의 면.
[명칭 유래]
부내면(府內面)은 ‘부내(府內)’, 즉 ‘부(府)의 안쪽’이라는 뜻으로 직역할 수 있는데 이는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인천도호부 관아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면리제가 시행됨에 따라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다소면(多所面)과 부내면이 생겼다. 부내면에는 청사가 있는 만큼 인천도호부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883년 개항이 되면서 정부는 개항장인 지금의 인천광역시 중구에 개항장과 개시장의 행정 및 통상(通商)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인 감리서(監理署)를 설치하고 부(府) 청사의 소재지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서 인천광역시 중구 내동으로 옮겨졌다. 1903년 8월에는 아예 개항장 일대만을 관할하는 부내면(府內面)이 제물포 지구에 새로 생겼고, 이때까지 인천부 다소면(多所面) 지역이었던 이곳에서 선창리와 고잔리, 송림리를 떼어 제물포 지역을 총괄하는 면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914년 행정 구역이 개편됨에 따라 조선 시대 부내면에 속했던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문학동, 학익동 등은 문학면의 일부로 들어가게 된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조선 시대의 부내면에는 현재의 선학동과 관교동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선학동은 예로부터 도장 마을 또는 도정이나 도재 등으로 불리던 곳이며, 관교동은 조선 시대에 인천도호부 관아가 있었던 인천의 중심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