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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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寧金氏 |
영어공식명칭 | Gimnyeng Gimsi|Gimnyeng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남석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86년 - 김령김씨 당진 입향조 김경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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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669년 - 김령김씨 당진 입향조 김경일 사망 |
본관 | 김령(金寜) - 경상남도 김해시 |
입향지 | 김령김씨 당진 입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 |
세거|집성지 | 김령김씨 당진 세거지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 |
묘소|세장지 | 김령김씨 당진 세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 |
성씨 시조 | 김시흥(金時興) |
입향 시조 | 김경일(金慶一) |
[정의]
김시흥이 시조이고 김경일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김령김씨(金寜金氏)는 경주 김씨의 일문으로, 시조는 김시흥(金時興)이다. 당진 입향조는 16세손 김경일(金慶一)[1586~1669]이다. 김경일은 조선 후기의 인물로 입향 경위는 알려진 바 없다. 김경일의 후손들은 350여 년 동안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를 중심으로 세거지를 형성하며 거주하고 있다.
[연원]
김령김씨는 원래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있는 경주 김씨의 일문이다. 경주 김씨는 천년의 역사를 이어 오면서 많은 김씨가 분리되어 나갔고, 경순왕 때에 이르러 고려에 귀부함으로써 많은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또 여러 성씨를 발생케 하였다. 김령김씨의 시조는 경순왕의 8세손 김시흥(金時興)으로, 김알지의 35세손이다. 김시흥은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해 한림을 거쳐 외관으로 동북면 병마사를 지냈고 벼슬이 광록대부(光祿大夫)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이러한 공적으로 김령군(金寧君)에 봉해졌고 문열공(文烈公)에 추증되어 후손들이 김령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김시흥 이후 총 31개나 분파되었던 김령김씨 일문은 고려, 조선 초기에 명문 일족으로서 탄탄한 길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직에 올랐고 충신·학자를 다수 배출하였다. 경상도 안렴사와 형부 시랑을 지낸 김중원의 아들 김귀갑은 원나라에 들어가 시서화(詩書畵)의 대가인 조맹부 등과 교류하며 문명을 떨쳤으며, 조선의 개국에 반대해 절개를 지키다 이방원에게 살해되었다. 김광서를 비롯해 김중원 등은 불사이군의 충절로 은거하며 절의를 지킨 고려의 충신들이다. 반대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공을 세워 좌찬성에 이른 김인찬은 조선 개국 1등 공신으로, 일찍이 무과에 등과해 명궁으로 이름을 날렸다. 후에 문하시중 찬성사로 추증되고 익화군(益和君)으로 봉해졌다. 명문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하던 김령김씨 일문이 수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김문기(金文起)[1399~1456]에 이르러서다.
김문기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56년 성삼문·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거사는 실패하였고 세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 후 사육신에 포함되는가의 여부로 논란을 일으켰다.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六臣傳)』에는 제외되었으나, 1977년 국사 편찬 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결정되어 노량진의 사육신 묘역에 김문기의 가묘가 설치되었다.
김문기의 단종 복위 거사 실패로 김씨 문중는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김문기의 가까운 일가는 유배를 당하였고 김령김씨라는 이유만으로 역적의 누명이 씌워진 사람들도 많아 산중으로 피하거나 본관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입향 경위]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에 거주하는 김령김씨는 충정공파(忠貞公派)로, 낙향조는 시조의 16세손 김경일이다. 김경일이 장고항에 입향하게 된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족보에 따르면 김경일은 자가 천수(天授), 호가 해수(海叟)이고 83세까지 장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현황]
장고항의 김령김씨는 시조 김시흥의 13세손인 충정공 김준영(金俊榮)의 후손들이다. 김령김씨의 대표적 문파로서 ‘충정공 준영파’라고도 부르는데, 김준영의 손자이며 시조의 15세손인 김정우(金鼎禹)에게 4형제가 있었다. 맏아들인 김만일(金萬一)의 후손은 주로 전라도 고흥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인 김행일(金行一)의 후손 또한 전라도 고흥 지역, 셋째 아들인 김경일(金慶一)의 후손이 당진의 장고항에 거주하고 있다. 넷째 아들인 김진일(金進一)의 후손들은 당진시 고대면에 다수 거주하고 있다.
장고항의 김령김씨는 장고항 1리에 50여 호가 거주하고 있고, 장고항 2리에는 2~3호, 장고항 3리에 5~6호, 교로리에 20여 호가 모여 살고 있다. 김령김씨는 그 외에도 고대면에 20여 호, 당진시 사기소동에 50여 호가 나뉘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