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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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林公所 |
영어공식명칭 | Deoklim Catholic Church|Deoklim Gongso |
이칭/별칭 | 무내미공소,천주교 덕림교회,덕림천주교회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주산동로 11[덕림리 1099-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병구 |
설립 시기/일시 | 1890년 - 무내미공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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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미상 - 무내미공소에서 덕림공소로 개칭 |
최초 설립지 | 무내미공소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덕림리 |
현 소재지 | 덕림공소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주산동로 11[덕림리 1099-1] |
성격 | 공소 |
설립자 | 베르모렐 신부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덕림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부안성당 소속 공소.
[개설]
덕림공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덕림리 일원의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와 공소 예절 및 각종 기도 모임을 갖는 신앙생활 공간의 중심이었으나, 현재는 폐쇄된 상태이다.
[설립 목적]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덕림리 지역을 중심으로 천주교 진리의 전파와 함께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이끌고, 지역 공동체의 발전 및 지역 주민의 행복 추구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천주교 역사를 공소의 존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전라북도 부안에는 이미 1847년(헌종 13)에 최양업(崔良業) 신부가 신지도 표류 중에 확인한 대소공소와 1857년(철종 8)에 방문한 불무동공소가 있었다. 1882년(고종 19) 이후 선교사 보고서에 등장한 납틔, 사창, 공작, 만석동, 가는재, 석상 등의 공소도 있었다. 덕림공소의 역사는 1890년(고종 27) 베르모렐(Vermorel) 신부가 고해성사를 주기 위해 무내미를 처음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무내미는 수월리(水月里)의 순우리말인데 본래는 ‘수월리(水越里)’로서 물넘이가 무넘이를 거쳐 ‘무내미’로 되었던 것이다.
무내미는 임피 산곡[현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산곡리]에 살던 정복조(鄭福朝) 회장이 이주해오면서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산곡은 옹기점이 있던 천주교 신자 마을이었다. 정복조는 무내미에서 옹기점을 열어 신자들을 불러 모았다. 무내미는 이내 생계를 찾아 모여든 사람들로 넘쳐났고, 전라북도 부안에서 가장 큰 공소가 되었다. 1893년(고종 30)에는 신자 수가 100명에 육박했고, 1909년(순종 3)에는 180명에 이르렀다. 부안에 본당이 세워진다면 무내미가 단연 1순위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신자 수였다. 본당이 없던 부안 내 공소들은 전주, 수류[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 정읍 신성리본당 소속으로 바뀌어 갔다. 1926년 전라북도 부안 최초의 본당이 등용에 세워지면서 무내미공소도 등용본당 소속이 되었고, 1935년에는 부안 읍내로 본당이 옮겨 가면서 자연히 부안본당 소속의 공소가 되었다.
1969년에는 정순경 야고보 회장의 초가 39.67㎡를 경당으로 사용했으나 비가 새고 쓰러질 지경이었다. 1970년대 이후 경당 신축을 계획했고, 1983년에 이르러 14세대 밖에 안 되는 신자들이 비용 마련을 위해 좀도리[절미(折米)]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어 1989년에 지금의 공소 경당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현재 덕림공소 신자들은 부안본당으로 미사를 다니고 있고, 공소에서는 별도의 미사나 공소 예절을 행하지 않고 있다. 비록 폐쇄되긴 했지만 공소 외벽에는 아직도 ‘부안 천주교 발상지 덕림공소’라고 새긴 대리석 판이 있고, 경당 내부에는 청동 14처와 십자가 및 제대가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교육 활동으로 1901년(고종 38)부터 공소 학교를 운영하였다. 첫 해는 학생 4명이 있었고, 1902년에는 5명, 1903년에는 9명으로 늘었으나, 교사를 구하지 못하고 재정난까지 겹쳐 문을 닫았다. 아동 복지 활동으로 1902년에는 어린이 1명을 신자 가정에서 수탁·양육하도록 주선했고, 1903년 무내미공소 어린이 1명을 고아원에서 양육하도록 주선했으나 재정적 어려움으로 활동을 중단하였다.
[현황]
이농과 고령화로 인한 신자 수의 급감으로 공소는 폐쇄 상태이고 신자들은 부안본당으로 미사를 다니고 있다.
[의의와 평가]
덕림공소는 이농과 고령화로 폐쇄되긴 했지만, 개항기 이후 일제 강점기까지 전라북도 부안에서 가장 신자가 많았고, 만석공소와 함께 부안 천주교의 발상지로서 오랜 역사를 가진 공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