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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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鶴洞百濟土器散布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배성수 |
성격 | 유적|유물 산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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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 인천광역시 |
관리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9년 - 문학동 백제 토기 산포지 문학산 일대 지표 조사에서 백제 토기 조각 수습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0년 - 문학동 백제 토기 산포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선사 유적을 인하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7년 - 문학동 백제 토기 산포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선사 유적을 인하 대학교 박물관에서 추가 발굴 조사 |
소재지 | 문학동 선사 유적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
출토 유물 소장처 | 인하 대학교 박물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253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문학 경기장 인근에서 발견된 백제 토기 산포지.
[개설]
인하 대학교에서 1999년에 실시한 문학산 일대 문화 유적 지표 조사와 2000년에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백제 토기 산포지이다. 두 건의 조사에서 모두 12점의 백제 토기가 출토되었다. 백제 토기가 수습된 구릉의 동쪽 면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자연 환경과 연관하여 볼 때 백제인들의 생활 유적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유물 산포지의 남쪽으로 제2 경인 고속 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고속 도로가 건설되면서 구릉의 끝자락이 삭토(削土)된 상태인데, 백제 토기 편은 이 삭토된 절개면과 인접한 지점에서 수습되었다. 따라서 문학 경기장 건설 이전에 승학산 쪽으로 뻗어 있던 북사면과 동사면에 걸쳐 유적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치]
문학산 동남쪽 문학 경기장 인근의 구릉지에서 확인된 유물 산포지는 행정 구역상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과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의 접경 지역이다. 유물 산포지의 남쪽으로 제2 경인 고속 도로가 지나며, 문학동 백제 토기 산포지는 제2 경인 고속 도로에 의해 남북으로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문학 경기장 진입로에서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으로 향하는 굴다리를 지나면 서쪽으로 문학산으로 오르는 구릉이 시작된다. 문학산으로 오르는 구릉 중턱에 남쪽 유물 산포지가 존재한다. 북쪽 유물 산포지는 문학 경기장 입구 암벽 클라이밍장 동쪽에 있었는데, 2009년 경기장 신설 공사로 인해 현재 파괴된 상태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문학 경기장 진입로 건설 공사에 따라 1999년 문학산 일대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 처음 백제 토기 편이 발견되면서 유물 산포지가 확인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에 인하 대학교에서 유물 산포 지역의 일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당시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의 구상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유구의 상단부에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2007년에 인하 대학교에서 이 지점에 대한 추가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 시대 주거지를 확인하였다.
[출토 유물]
1999년의 지표 조사에서 백제 토기 편 6점이 수습되었는데 모두 연한 황갈색을 띤 연질 토기 동체부의 편들이다. 2000년 발굴 조사에서도 역시 백제 토기 편 6점이 출토되었는데 앞서 언급한 것과 동일한 형태의 백제계 타날문 토기 동체부편들이 출토되었다. 현재 유물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253의 인하 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현황]
현재 유물 산포지의 일부는 문학 경기장 건설 공사로 인해 훼손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백제 초기 비류(沸流) 세력의 근거지인 미추홀(彌鄒忽)의 위치 비정과 관련하여 미추홀이 지금의 인천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