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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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二萬弗時代-礎石-朱安工團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인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9년 2월 8일 - 주안 공단 (사)인천 기계 공업 공단으로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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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8년 5월 1일 - 주안 공단 인천 기계 공업 관리 공단으로 설립 허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9월 10일 - 주안 공단 인천 기계 산업 단지 관리 공단으로 명칭 변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9년 8월 5일 - 주안 공단 제5단지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3년 12월 8일 - 주안 공단 제6단지 지정[비철 금속 단지 흡수] |
산업 단지 | 주안 공단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인천광역시 서구 가좌동|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 일원 |
[개설]
주안 공단은 1964년 제정된 「수출 산업 공업 단지 개발 조성법」에 근거하여 1969년부터 1973년의 기간에 기업의 상품 수출을 목적으로 주안 염전을 메워 만든 산업 단지다. 행정 구역상 주안 공단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동·부평구 십정동 일대의 한국 수출 산업 단지 제5단지, 가좌동의 한국 수출 산업 단지 제6단지가 있고, 1969년 「지방 공업 개발법」에 근거하여 조성된 주안동의 지방 산업 단지인 인천 기계 산업 단지를 포함한다. 주안 공단은 1970년대와 1980년대 공업화 과정에서 부평 수출 산업 단지와 함께 한국 경제 성장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도시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한 반면에 한국 노동 운동사에서 노동자 투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생산 현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1980년대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남동 국가 산업 단지 개발,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광역시 남동구 등 신도시 조성 등으로 미추홀구의 경제 활동 인구와 주거 인구가 이동하면서 산업 공간으로서 주안 공단은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1980년대 이르는 기간 동안 주안 공단에 노동력 공급처 역할을 해온 배후지로서 미추홀구의 중심 기능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쇠퇴하게 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주안 염전에서 주안 공단으로]
1960년 GDP 90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은 제1차 경제 개발 계획에서 수출 주도 산업화 정책을 발표하고, 대규모 수출 산업 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본격화하였다. 정부는 수출 산업 단지를 관리하고 운영할 법인체 구성의 필요에 따라 1963년 10월 한국 경제인 협회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수출 산업 공단을 설립하고, 부지 선정을 위한 작업을 추진한 결과 부평과 주안에 약 70만 평에 이르는 수출 산업 단지를 개발하였다.
대규모 산업 단지 개발 지역으로 부평과 주안이 선정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천이 항만과 철도 등 기반 시설과 도시 외곽의 넓은 공업 용지, 풍부한 공업 용수와 값싼 노동력의 잠재 등 기업의 생산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안 공단 개발을 위해 필요한 공업 용지는 당시 폐전된 주안 염전을 매립하여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에 밀집한 공장의 분산 효과와 수도권에 산재한 공장들을 한곳에 집적할 수 있다는 기대도 주안 공단의 설립에 크게 작용하였다. 1960년대 주안 염전은 대한 염업 주식회사 소유로 당시 소금이 과잉 생산되면서 폐전되어 염전으로서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기에 산업 용지로 전환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주안 염전 매립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제5국가 수출 산업 단지와 비철 금속 단지인 제6국가 수출 산업 단지가 조성되었다. 동시에 인천 상공 회의소와 경인 기계 협동조합 등 상공업계가 금속 및 기계 공업 부문에 특화된 민간 주도의 인천 기계 산업 단지도 조성되었다.
이로써 주안 공단은 약 1.32㎢[40여만 평]에 이르는 광대한 매립 부지에 섬유, 화학, 식품, 기계, 철강, 비철 금속, 전기 및 전자, 목재 등 전 산업 분야에 걸친 제조업이 입지하여 1980년대까지 지역 경제는 물론 국가 경제의 주역으로 산업화를 주도하는 핵심 역할을 하였다.
[주안 공단과 미추홀구의 성장]
주안 공단은 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서구 가좌동, 부평구 십정동 등 행정 구역이 겹치는 지역으로 약 1.32㎢[40여만 평]의 주안 염전을 매립하여 공업용 부지로 개발하였으며, 제5국가 수출 산업 단지, 제6국가 수출 산업 단지, 인천 기계 산업 단지가 입지하여 있다.
주안 공단은 민간 주도의 공단 개발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강제 흡수, 통합되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공간이다. 현재 제6국가 수출 산업 단지는 1969년 민간 주도로 조성된 비철 금속 단지의 기업 유치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1973년 한국 수출 산업 공단에 흡수, 통합되어 국가 수출 산업 단지로 전환된 산업 공간이다. 이는 부평 국가 수출 산업 단지 개발을 주도한 인천 수출 산업 공단이 해산된 2년 후의 일이다. 즉 1971년 11월 당시 이낙선 상공부 장관은 한국 수출 산업 공단[이사장 최명헌]이 부평 수출 산업 단지를 흡수, 통합한다는 내용을 발표하고, 인천 수출 산업 공단[이사장 김인식]을 강제 해산하여 국가 통제 하에 둔 것과 마찬가지로 제6국가 수출 산업 단지는 1973년 인천 기계 산업 공단이 개발한 비철 금속 단지를 한국 수출 산업 공단이 흡수, 통합하여 조성한 산업 단지이다. 한국 수출 산업 공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민간 주도로 개발된 인천 기계 산업 단지를 제7국가 수출 산업 단지로 흡수하기 위한 구체적인 협의도 진행하였다. 그러나 1976년 공단 관리청이 해산되고 상공부 내 공단 관리국 신설이 논의되면서 제7국가 수출 산업 단지로의 흡수 시도는 무산되었다.
현재주안 공단에는 국가 관리 체계 하에 운영되고 있는 제5, 6국가 수출 산업 단지와 지방 관리 체계 하에 있는 민간 산업 단지인인천 기계 산업 단지가 공존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주안 공단은 수많은 중소 제조업체와 하청 관계를 유지하여 일자리 창출과 노동인구 증가에 크게 기여하였다.
주안 공단에는 섬유, 화학, 식품, 기계, 철강, 비철 금속, 전기 및 전자, 목재 등 전 산업 분야에 걸친 제조업이 들어서 수만 명의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구 증가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인천의 구별 인구 분포를 보면 미추홀구는 1963년 28.4%에서 1972년 36.8%, 1974년 39.5%, 1985년에는 44.6%를 차지하여 다른 구에 비해 월등히 높은 인구 집중률을 보였다. 인구 증가는 공동 주거 단지 건설, 시장과 학교, 공공시설 등 각종 시설의 필요에 따라 개발 사업을 촉진시켰다. 주안 공단의 활성화와 인구 증가는 금융 기관의 집중으로 이어져 미추홀구 석바위에는 은행, 증권, 보험사 등이 밀집하였으며, 주변 지역으로 상권이 확대되었다. 미추홀구는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한 학교 설립도 늘어 주안역을 이용하는 인하 대학교 학생과 제물포역을 이용하는 선인 재단의 수천 명 학생이 이동하면서 경제 활동 중심지로서뿐 아니라 교육 중심지 도시로도 부각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제조업 중심의 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주안 공단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남동 국가 수출 산업 단지 건설과 연수구와 남동구 등 신도시 개발은 미추홀구의 경제 활동 인구와 주거 인구의 이동을 촉진하였고, 인구의 이동은 미추홀구 인구 감소와 상권 쇠퇴로 이어졌으며, 상권의 쇠퇴는 미추홀구의 쇠퇴를 촉진하며 활력을 잃게 하였다. 도시 규모의 팽창과 함께 주안 공단을 중심으로 성장한 경제 활동 중심지 기능은 쇠퇴하고, 경제 활동 중심 기능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미추홀구는 새로운 도시 기능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산업화와 자립 경제 달성에 큰 역할을 한 주안 공단은 인천이 대도시로 성장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였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채 도시 규모 팽창에 따라 섬처럼 고립되어 버림으로써 미추홀구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국민 소득 2만 불 시대에 도시 외곽으로 경제 활동 중심 기능이 이동하면서 옛 도심의 성장을 회복하기 위한 미추홀구의 선택은 무엇인지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안 공단의 현황]
주안 염전의 매립으로 조성된 주안 공단은 한국 수출 산업 제5단지 약 67만 7685㎡[20만 5000여 평], 제6단지 31만 5702㎡[9만 5500여 평], 민간 산업 단지로서 인천 기계 산업 단지 32만 7272㎡[9만 9000여 평] 등 총 1.32㎢[[40만여 평] 크기로 조성된 산업 공간이다. 주안 공단 주변에는 기업의 생산 활동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제1 경인 고속도로 가좌 나들목, 인천항, 인천 국제 공항, 김포 공항이 있어 기업의 운송 시간 절감은 물론 수출입의 유리한 입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수도권 전철 1호선에는 동암역, 간석역, 주안역, 도화역, 제물포역, 도원역이 있으며, 인천 도시 철도 1호선에는 간석 오거리역이 있어 노동자들의 이동이 수월하다.
2018년 6월[2분기] 기준 주안 수출 산업 단지[제5 국가 수출 산업 단지와 제6 국가 수출 산업 단지]에는 식품, 섬유, 목재, 석유 화학, 비금속, 철강, 기계, 전기 전자, 운송 장비 등 1,672개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가동업체는 1671개이다. 전체 종업원 수는 2만 278명이며, 생산액 누계는 4조 1484만 7200만 원이다.
인천 기계 산업 단지는 조성 당시 54개 업체가 입주하였으며, 2018년 6월[2분기] 기준으로 입주 업체는 174개사, 가동 업체는 174개사이다. 주요 업종은 비금속, 기계, 철강, 전기 전자 등으로 고용 인원은 2,809명이며, 생산액 누계는 1,772억여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