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천산 친목계와 걸궁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C030201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신동(새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삼문

천산 친목계는 2007년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70세 전후의 노인들이 1960년에 결성하였다.(사진을 보면 당시 결성 인원은 23명으로 보인다) 친목계의 1차 목적은 상여계를 대체한 마을의 길·흉사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마을의 흉사 때 사용하는 상여는 학서지 제방 옆에 상여집이 있었으나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1972년 경지정리 때 현재의 부처마에 시멘트블록조로 새로 짓고 상여도 철상여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천산 친목계 이전에 ‘초롱계’(또는 명등계)라는 상여계가 있었지만 초롱계를 주도하던 어른들이 돌아가시면서 그 아랫대에 해당하는 천산 친목계 회원들이 길·흉사를 대신 관리하게 되었는데, 점차 규모가 더 확장되면서 조직이 커졌다. 천산 친목계 회원들은 기존에 마을에서 볼 수 없었던 ‘걸궁패’를 조직하여 마을에 결혼, 가옥 신축, 도로확장, 정월 보름의 계추(동회) 등 마을의 주요 행사 때 굿을 치며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조직이었다.

당시 천산 친목계의 걸궁패 구성은 꽹과리 2, 장구 1, 징 1, 북 1, 상모 2, 소고 7~8명, 경찰 1, 양반, 1, 기수 1, 각시 1, 포수, 원숭이 1 등이다. 메구(꽹과리)를 치던 사람은 김수학, 권순표 씨로 모두 고인이 되었으며, 메구를 특별히 배운다거나 원래 치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천산 친목계의 결성은 각 회원들이 곡식을 조금씩 모아서 악기와 복색을 갖추었다. 곡식은 많이 내는 사람은 한 가마니도 내고 각자 성의껏 내었다. 이러한 천산 친목계 회원들은 당시 미혼자들이거나 갓 결혼을 한 젊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마을에 새마을 운동 당시에도 마을 사업을 주도적으로 했던 계층이기도 하였다. 걸궁패에서 양반을 했던 장치석 씨는 1970년대 마을 이장과 새마을지도자를 역임하면서 마을이 변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장권식, 장병기, 장치석 씨 등 당시 천산 친목계를 결성, 주도하던 분들이 거의 생존해 있어 활발하게 활동하던 당시를 마을회관에 걸려있는 사진 한 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