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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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興佑金海金氏順興安氏烈女門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Gate for Lady Choi Heungwoo, Kimhae Kimssi, Sunheung Anss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 산1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남석 |
현 소재지 | 최흥우·김해김씨·순흥안씨 열녀문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 산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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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최흥우·김해김씨·순흥안씨 열녀문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 산10 |
성격 | 정려|열녀문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간 |
측면 칸수 | 1간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있는 효열 3정려.
[개설]
최흥우·김해김씨·순흥안씨 효열 3정려는 해주 최씨 최흥우(崔興佑)의 효행(孝行)과 부인인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열행(孝行), 그리고 최흥우의 제수인 동생 최흥달(崔興達)의 부인 순흥안씨(順興安氏)의 열행(烈行)을 기리고 있다.
최흥우는 우애가 깊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들었을 때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병시중을 들었다. 부모상을 당하자 최흥우는 3년간을 하루같이 묘소 앞에 꿇어앉아 절을 올렸다. 이 때문에 묘소 앞에는 깊은 구덩이가 생겼다고 한다. 부인인 김해김씨도 남편 못지않게 시부모를 정성껏 모셔 효부로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러한 부부의 효심이 조정에 알려져 효자·효부 정려를 받게 되었다.
열녀 순흥안씨의 행적은 전하는 바가 없어 상세히 알 수 없으나, 후손들의 말에 따르면 최흥우의 동생인 최흥달의 아내로 남편 임종 시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이고 평생 수절했다고 한다. 이에 조정에서는 세 개의 효자·효부·열녀 현판을 내리고 정려를 세웠다. 하지만 모두 ‘정해사월(丁亥四月) 중수(重修)’라 하였을 뿐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위치]
최흥우·김해김씨·순흥안씨 효열 3정려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 산10번지 불당골 마을에 있다. 고려 시대 문신이었던 최충(崔沖)[984~1068]을 배향하는 제각인 해동 영당(海東影堂) 바로 옆에 있다.
[형태]
정려는 정면 3간, 측면 1간의 맞배지붕으로 홑처마를 한 도리식 건물이다. 정려의 정면은 홍살을 설치하였으며, 좌우 북벽 3면은 흙벽으로 막았다. 정려 현판은 북쪽에 ‘효자 증가선대부 해주 최흥우지문 정해 사월일 중수(孝子贈嘉善大夫海州崔興佑之門丁亥四月日重修)’, 가운데에 ‘효부 증정부인 김해 김씨지려 정해 사월일 중수(孝婦贈貞夫人金海金氏之閭丁亥四月日重修)’, 남쪽에는 ‘열녀 증정부인 순흥안씨지려 정해 사월일 중수(烈女贈貞夫人順興安氏之閭丁亥四月日重修)’라 적혀 있다. 하지만 건물이 쇠잔해지면서 순흥안씨 열녀 정려 현판을 김해김씨 효부 정려 현판 위에 겹쳐서 걸었다. 이 때문에 현재 김해김씨 효부 현판은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현황]
해주 최씨 대종회에서는 정려를 보호하기 위해 정려 사면에 시멘트 블록으로 담을 쌓아 외지인 출입은 불가능하다. 또한 정려각은 전체적으로 쇠락하고 파손되어 재건축이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최흥우·김해김씨·순흥안씨 효열 3정려는 조선 시대 성리학적 세계관을 당진 지역에서 엿볼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