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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51
한자 平山申氏烈女門
영어공식명칭 Memorial Gate for Lady Pyeongsan Sinss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97년연표보기 - 평산신씨 열녀문 건립
현 소재지 평산신씨 열녀문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 산224-12 지도보기
원소재지 평산신씨 열녀문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 산224-12
성격 정려
양식 한옥 맞배지붕
정면 칸수 1간
측면 칸수 1간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있는 평산신씨의 열녀문.

[개설]

평산신씨(平山申氏)[?~?]는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기경(朴基敬)의 부인이다. 부부는 조선 후기 정조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살았다. 평산신씨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온순하고 효심이 뛰어났으며, 시집간 후에도 남편을 하늘같이 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박기경이 갑자기 사망하였다. 일설에는 평산 신씨가 친정에 가던 길에 남편이 급사하였다고도 한다.

남편이 죽은 지 3일이 지난 후, 장례를 정성껏 치른 평산 신씨삼봉리 기시미 마을 앞바다에 몸을 던졌다. 앞치마에 돌을 싸안고 남편의 뒤를 이어 자결한 것이다. 평산신씨의 남편에 대한 일편단심은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우의정이었던 정만석(鄭晩錫)[1758~1834]이 임금에게 청해 평산신씨에게 열녀문이 내려졌다.

[위치]

평산신씨 열녀문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 산224-12 기시미 마을에 있다. 마을의 작은 언덕에는 두 개의 정려가 있는데, 약간 크기가 작은 정려가 평산신씨의 열녀문이고 큰 정려는 손자며느리인 한양 조씨의 열녀문이다.

[형태]

평산신씨 열녀문은 사각형의 황토 기단 위에 정면 1간, 측면 1간으로 홑처마이고, 한식 맞배지붕 양식이다. 초석은 막돌이고 그 위에 사각형의 기둥을 세웠다. 정면은 하방 아래까지 시멘트로 처리하였고, 그 위에 홍살을 설치하였다. 가구 양식은 초익공(初翼工)[촛가지 하나로 꾸민 공포]이다. 양 측면 박공[박공지붕의 옆면 지붕 끝머리에 '∧' 모양으로 붙여 놓은 두꺼운 널빤지] 밑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경려각 안의 정면에 현판이 있는데, 현판 내용은 ‘고 학생 박기경 처 유인 평산신씨 열녀지문 가경 2년 정사 2월 일 건립(故學生朴基敬妻儒人平山申氏烈女之門 嘉慶二年丁巳二月日建立)’이다. 가경 2년은 1797년(정조 21)이다.

[현황]

평산신씨 열녀문은 주민들에 의하여 매우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주변에 큰 소나무와 관상수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조경하였다. 위치도 마을의 중앙에 있어서 주민들이 열녀문 주변 길을 항상 통행하게 되어 있고, 열녀문과 주민의 삶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대로변에 표지판이 없어서 외지인이 열녀문을 찾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의의와 평가]

평산신씨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거주하는 성씨이다. 평산신씨 여인이 인근 마을인 삼봉리의 밀양 박씨 가문에 시집간 것이다. 이 때문에 평산신씨 열녀문은 밀양 박씨 뿐만 아니라 평산신씨 집안에서도 크게 기리는 열녀문이다. 특히 손자며느리인 한양 조씨의 문중도 석문면 교로리에 집성촌을 이루는 집안으로, 비슷한 시기에 두 명의 열녀를 배출하였다 하여 석문면의 선행으로 강조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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