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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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州林氏烈女門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Gate for Lady Naju Ims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270-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남석 |
건립 시기/일시 | 1933년 - 나주임씨 열녀문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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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나주임씨 열녀문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270-2 |
원소재지 | 나주임씨 열녀문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270-2 |
성격 | 정려|열녀문 |
양식 | 한옥 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간 |
측면 칸수 | 1간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에 있는 나주임씨의 열녀문.
[개설]
나주임씨(羅州林氏)는 한인동(韓仁東)의 부인이다. 아들을 낳지 못하자 남편은 첩을 들여 자식을 낳게 하였는데, 나주임씨는 첩이 낳은 2남 1녀까지 양육하여 집안을 크게 번성하게 한 열녀이다.
[위치]
나주임씨 열녀문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270-2 보덕포에 있다.
[형태]
나주임씨 열녀문은 팔각으로 다듬은 주춧돌 위에 둥근기둥을 올렸고, 4면의 벽은 모두 쇠창살을 설치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맞배지붕이며, 공포는 초익공(初翼工)[촛가지 하나로 꾸민 공포]의 양식을 보인다. 넓이는 1평 정도로 정면 1칸, 측면 1칸이다. 정려 안에 ‘열녀 청주 후인 효릉 참봉 한공 인동 처 나주임씨 숙인지문(烈女淸州后人孝陵叅奉韓公仁東妻羅州林氏淑人之門)’, ‘공부자 탄강 이천사백팔십사년 계유월일(孔夫子誕降二千四百八拾四年癸酉月日)’이라 쓰여 있다.
[관련 내용]
나주임씨는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의 한인동에게 시집을 갔다. 늘 공손한 마음으로 아녀자의 덕목을 지키며 남편을 봉양하여 이웃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하지만 딸 한 명을 두었을 뿐 아들을 낳지 못했다. 이를 죄스럽게 여긴 나주임씨는 남편으로 하여금 최씨를 첩으로 맞아들이도록 주선하였다. 남편 한인동은 체격이 우람하고 성격이 괴팍해서 최씨를 때리고 학대하였다. 나주임씨는 남편을 설득하고 따뜻한 우애로 첩을 보살폈다. 이후 최씨는 아들 형제와 딸 한 명을 낳았다. 나주임씨는 첩과 같은 집에 거주하면서도 늘 자상한 큰어머니 역할을 하였고, 집안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가득하도록 애썼다. 또한 가난한 살림에도 남편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아 효릉 참봉 벼슬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지방 유림에서는 나주임씨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1933년에 열녀문을 세웠다.
[의의와 평가]
나주임씨는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남편 한인동을 전성으로 내조하며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었다. 석문면 삼화리 주민들은 나주임씨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마을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