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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낭굿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1088
영어공식명칭 Seonang-gut(Shamanic ritual for a tutelary deity)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강원도 삼척시
집필자 윤동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제의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마을 단위의 동신(洞神)에게 행하는 무속 공동제의.

[개설]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는 마을공동제의를 ‘서낭제’ 또는 ‘서낭굿’ 등으로 부른다. 전승 주체에 따라 풍속에 대한 인식은 다를 수 있지만, 무속인들에게 서낭굿이 지니는 현재적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지되는 전통’이며, 동신에게 감사하며 안녕과 풍요를 비는 마을의 미풍양속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것이 서낭굿의 정체성과 지속성을 지지하고 있다.

[절차]

서낭굿은 마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굿을 할 때 부정을 먼저 치는 것은 동일하다. 굿이 열리는 장소에 부정을 치고, 서낭당에 가서 서낭을 청해온다. 서낭을 청해오면 청좌굿을 한다. 청좌굿은 ‘화해굿’이라고도 한다. 청좌굿이 끝나면 조상굿, 세존굿, 성주굿, 장군굿[놋동이굿], 말명굿 순으로 진행한다. 아울러 바다에서 용신제를 지내는 경우에는 심청굿도 한다. 심청굿은 세습무들이 많이 한다. 경우에 따라서 말명굿이 끝나면 바닷가에서 용신굿을 한다. 용신굿을 하지 않으면 꽃노래, 뱃노래, 등노래를 하고 뒷거리로 마무리한다. 서낭굿을 맡은 무당에 따라 굿거리 구성에서 차이가 나기도 한다. 보통 말명굿이 끝나고 서낭님을 다시 모셔서 올라가지만, 간혹 꽃노래 등을 다하고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마을마다 다르기 때문에 꼭 정해진 순서는 없다. 김동철의 경우에는 마을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만, 본래 알기로는 모든 굿을 다 마치고 신을 돌려보낸다.

[현황]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이후 마을공동체의 해체로 인해 오분·동막·부남·교곡·선왕골·덕산 등에서는 마을 당신(堂神)을 위한 서낭굿이 사라졌다. 이 시기에는 무당굿이 미신타파로 위축되거나 금지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살아남은 굿은 새마을운동 이후 근대화 및 서구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이 굴절되었다. 국가는 마을공동체 신앙을 미신타파라는 명목 하에 파괴하였는데 오분리의 경우에는 서낭당을 없애고 굿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정라진에서는 “굳이 깰 필요가 뭐 있겠느냐. 또 이 지역의 전통적인 하나의 예술인데 가만히 놔두다가 좀 기한을 늦춰 가지고 하자.”는 공론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70년대 굿의 현장은 사회적 상황의 반영과 전승 주체의 갈등이 복합되어 있다. 무의례의 전통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여 계승을 주장하는 부류와 미신적 행위라 생각하여 부정하는 부류가 대립한 것이다. 결국 굿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에 의해 갈등을 일으켰다. 이러한 표면적인 문제의 배경에는 마을주민 간의 인식의 차이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 한몫을 담당했다.

근대화의 역점을 경제상의 소득 증대에 두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굿은 근대화에 역행하는 저해 요소로 간주되고, 때로는 미신타파의 대상이 되었다. 정부는 ‘미신 없는 우리 마을’이라는 표어 아래 새마을운동을 전개하여 마을굿을 미신으로 간주하고 타파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미신타파 정책에 호응하는 교육을 받은 청년층은 무속제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1970년대까지도 민속신앙은 미신으로 치부되었다. 국가와 행정기관은 간접적인 정신개혁 운동을 통해 근대화의 걸림돌인 미신을 없애고자 했다. 국가권력이 마을공동체 차원에서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동제나 별신굿을 미신시하여 타파하고 이에 대한 공동체의 결집을 생산력 증대에 이용하고자 했다. 이로 인해 마을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하고 있던 공동체신앙의 존재 기반이 위협받게 되었다.

그러나 굿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1980년대 이후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전통문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고조되고 굿을 민족문화의 근간으로 인식한 것이다. 삼척에서는 정라진풍어제·미로단오굿·초곡단오제·궁촌풍어제·임원풍어제·선흥단오굿 등이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제의를 유지하는 이유를 물으면, “옛날부터 해온 거니까” 또는 “고기도 많이 잡고 동네 잘되라고 하는 건데” 등의 답이 대부분이다. 먼저의 대답은 굿의 전통성을, 나중의 대답은 종교성을 강조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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