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보도연맹원 학살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70
한자 完州郡保導聯盟員虐殺事件
영어공식명칭 Case of a slaughter of report alliance in Wanju-gun
이칭/별칭 완주군 민간인 학살사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상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1년 4월 25일연표보기 - 완주군 보도연맹원 학살사건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에서 1차 발생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1년 4월 29일연표보기 - 완주군 보도연맹원 학살사건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에서 2차 발생
발생|시작 장소 완주군 보도연맹원 학살사건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성북리 지도보기
성격 사건

[정의]

1951년 4월 전후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등지에서 국군이 민간인 수십 명을 빨치산으로 간주해 총살한 사건.

[개설]

1951년 4월 25일경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등에서 주민들이 국군에게 끌려가 조사를 받고, 며칠 후 국군에 의해 40여 명이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성북리 경천저수지 인근에서 집단으로 총살되어 매장되었다. 또한 1951년 4월 29일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주민 30여 명이 국군에 의해 ‘빨치산’이라며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 사살되었다. 그밖에도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 단지동에서 피난을 가지 않고 마을에 남아 있던 노인 3명이 국군에게 희생되었다.

[역사적 배경]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은 주로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주시와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의 북한군이 대부산대둔산으로 입산해 빨치산이 되면서 빨치산 활동이 활발하던 지역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지역 내 빨치산 토벌작전은 1950년 11월경부터 11사단에 의해 시작되었다. 1951년 4월 토벌작전의 주체가 8사단으로 바뀌는데 8사단은 이후 고산면 소재지를 거점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지역에 대한 토벌작전을 진행했다. 당시 동상면 소재지이던 신월리는 빨치산 활동의 중심지로 국군에게 잡히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아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활동이 자유로운 사람들은 산속으로 피난하러 다니는 상황이었다.

[경과]

1951년 4월 25일경 국군이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신월리 원신마을에 들어와 마을 주민 50여 명을 고산으로 끌고 가서 일주일 넘게 잡아놓고 조사를 한 후 풀어주었다. 몇 시간 후 군인들은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여 4~5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트럭에 싣고 가 경천저수지 인근에서 구덩이를 파고 총살했다. 이후 동상초등학교에 남아 있던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어린이들이 대부분인 마을 주민 30여 명은 1951년 4월 29일 다시 국군에게 끌려가 ‘빨치산’이라며 총살을 당했다. 이외에도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 단지동마을에서도 피난을 가지 못하고 마을에 남아 있던 노인 3명이 국군에게 임의로 총살을 당했다.

[결과]

완주군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은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로 진실이 규명되어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되었다.

[의의와 평가]

완주군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은 한국전쟁시기 빨치산 토벌을 목적으로 국군이 비무장 주민들을 살해한 민간인 학살사건 중 하나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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