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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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啓夏 |
영어공식명칭 | Hong Gyeha |
이칭/별칭 | 사옥,해운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제훈 |
추모 시기/일시 | 1882년(고종 19) - 홍계하 정려문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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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홍계하 효자비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 4리[옥계마을]![]()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남양 |
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홍계하의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부친은 홍중겸이다.
홍계하(洪啓夏)는 학행(學行)이 탁월하여 관동의 부자(夫子)라고 불리었다. 홍계하는 부모를 위하는 정성 또한 지극하였다고 한다. 시묘살이를 하는 3년 동안에는 죽을 먹으며 예를 다하였다고 한다. 모친이 병을 얻자 홍계하는 기도를 하였으며, 지극함이 미쳐 호랑이가 물어다 준 약으로 모친의 병을 치료하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홍계하 효자비각에는 후면에 ‘효자문(孝子門)’이라 쓴 편액을 정면에 걸어 두었다. 효자비각 안에는 내력과 정려(旌閭)된 사실을 기록한 『해운홍공정각OO기(海雲洪公旌閭OO記)』가 걸려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1882년(고종 19)에 정려문을 세워 표창하였다. 홍계하의 유고를 간행하여 세상에 널리 펼쳤으며, 매산(梅山)홍직필(洪直弼)[1776~1852]이 글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