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삼척 흥전리 사지 출토 국통명 비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80
한자 三陟興田里寺址出土國統名碑片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지도보기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편

[정의]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사지에서 출토된 비편.

[개설]

삼척 흥전리 사지는 삼척시에서 태백시로 넘어가는 38번 국도로 가다가 도계읍 흥전리에서 서쪽 매바위골로 들어가 산을 향하여 올라가면 산 중턱의 평탄면에 있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산 290-3이다. 현재 ‘절터’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그러나 흥전리 사지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으며, 한산사지(寒山寺址)라고 불리고 있을 뿐이다. 한산사지에 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관찬(官撰)지리지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사찬(私撰)지리지인 『삼척군지』, 『척주지』, 『진주지』에는 한산사가 고려·조선시대에 존재하던 사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 절터[사지(寺址)]에서 발견되는 석재와 유물들은 문헌 기록과 달리 통일신라 말 고려 초기의 유물로 볼 수 있으며, 유물의 중심 시대는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이들 유물은 불교미술사와 태백산 문화권의 영역을 규명하는 데 사료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이미 시론 수준의 고찰을 시도한 바 있다. 이를 통하여 삼척 흥전리 사지가 태백산 북쪽 사면에서 최초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속하는 절터이며, 영주-봉화-태백-삼척을 잇는 문화 전파의 교통로를 추정한 바 있다. 당시로서는 흥전리 사지 외 통일신라시대의 불교 유적·유물이 태백 지역에서 확인되지 않은 까닭에 일종의 가설이었다. 그 후 통일신라시대에 속하는 태백시의 본적사지 석탑과 유물이 조사되어 이 가설을 뒷받침해 주었다. 즉 이들 불교 유적·유물들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자장의 행적과 함께 태백산 지역이 신라시대-통일신라시대에 북방 경영과 관련하여 주요 거점 역할을 하였음을 실증하여 주는 것이다.

[형태]

흥전리 사지(興田里寺址)에서는 비편이 여럿 발견되었다. 이 가운데 하나이다.

국통이 새겨진 비편을 발견하기 전에 수습한 비문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1) … □김성계림지망(□金姓鷄林之望) …

(2) … 시당결행전어자□(示黨潔行傳於子□) …

? ? 호(乎)

(3) … 독이□이자□(獨二□而自□) …

?인(仁)우(兩)

(4) … □호□(□乎□) …

【2】(5) … □선림용흥□(□禪林龍興□) …

(藏)

(6) … □주야. 화(□珠也. 和)

(7) … 검덕시(儉德施) …

(8) … □□□ …

(9) … □□□ …

【3】(10) … 불마영류한탑송(不摩影留寒塔松) …

?

【4】(11) … 부어□왕지보살위(釜於□王之菩薩謂)…

?

이들 비문편은 내용이 워낙 단편에 불과하여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비편이 발견된다면 흥전리 사지의 역사성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특징]

흥전리 사지의 역사성을 알려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비편이지만 전체에 관한 양상을 알 수 없어 그 특징을 단정할 수가 없다.

[의의와 평가]

흥전리 사지에서 출토된 청동 정병 2점, 금동 주련과 함께 ‘국통(國統)’이란 글씨가 새겨진 비편이 발견됨으로써 신라 하대에 왕실과 관련한 스님이 주석한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