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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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烏山君李澍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1-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대남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37년 - 오산군 이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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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90년 - 오산군 이주 사망 |
현 소재지 | 오산군 이주 묘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1-1(N37°39'44.3306"E127°01'31.8627") |
성격 | 묘 |
양식 | 원형 단분 |
관련 인물 | 오산군(烏山君) 이주(李澍)[1437~1490]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전주 이씨 임영 대군파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 종친 오산군 이주의 묘.
[개설]
오산군(烏山君) 이주(李澍)[1437~1490]는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의 장남이다. 궁중에서 자랐으며, 8세에 중의오산군(中義烏山君)에 봉해졌고, 성종 대에는 현록오산군(顯祿烏山君)이 되었다. 세조에게서 친아들과 같은 은총을 받았으며, 문소전 사옹원 도제조(文昭殿司饔院都提調)로 직무에 신중하여 큰 차질이 없었다는 평을 받았다.
1471년(성종 2)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으며, 조신(朝臣)이 죄를 범하였을 경우 수속(收贖)하는 데 비하여 종친이 죄를 범하였을 경우 구사(丘史)를 몰수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이를 시정하도록 건의하기도 하였다. 풍기 군부인(豊基郡夫人) 창녕 성씨(昌寧成氏墓)와의 사이에 딸 2명을 두었으며, 풍기군 부인 연안 김씨(延安金氏)에게서 7남을 얻었다. 시호는 정목(靖穆)이다.
[위치]
오산군 이주 묘(烏山君李澍墓)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1-1번지 전주 이씨 임영 대군파 묘역에 위치한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서 우이동으로 넘어가는 오른쪽 도로변 산림 안에 묘역이 있다. 묘역의 입구에는 재실이 있다. 오산군 이주 묘 주위에는 오산군의 증손인 충청 감사 이충작 묘(李忠綽墓), 오산군의 9세손 이혜주 묘(李惠疇墓), 태종의 후궁으로 자식이 없어 이주의 아버지 임영 대군과 후손들이 제사를 모신 성빈 원주 원씨 묘(成殯原州元氏墓), 오산군의 부인인 풍기 군부인 창녕 성씨 묘(豊基郡夫人昌寧成氏墓)가 있다.
[형태]
묘는 단분 단독장이고, 동향이다. 근래에 호석(護石)을 둘렀다. 묘표, 문인석, 장명등 등의 석물과 근래 새로 세운 혼유석, 상석, 향로석, 비석 등을 갖추고 있다. 묘표는 하엽형으로 관석 52×27×45㎝, 비신 44×20×10㎝ 규모이다. 문인석은 복두 공복(僕頭公服)을 착용하였고, 허리 뒤에 야대(也帶)를 시문하였다. 장명등은 사모 지붕 형태의 옥개석을 갖췄고, 화사석(火舍石)[석등의 중대석 위에 있는 등불을 밝히도록 된 부분] 네 면에 원형의 화창(火窓)을 내었다. 크기는 옥개 77×76㎝, 총 높이 150㎝이다.
[금석문]
묘표는 마모가 심하여 앞면은 판독할 수 없고, 뒷면에 ‘홍치 삼 년 윤구월 이십칠 일 장(弘治三年潤九月二十七日葬)’이 새겨져 있어 1490년(성종 21) 장례를 치렀음을 알 수 있다.
[현황]
오산군 이주 묘는 1490년에 조성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근래에 비석 등 석물을 새롭게 조성하는 등 묘역을 정비하였으며,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 오산군 이주 묘뿐 아니라 후손의 묘가 집중되어 있어 조선 전기 묘제를 살펴보는 데 매우 의의가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