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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524
한자 李聖規三父子孝子門
영어공식명칭 Iseonggyu Father and Three son Monument Hous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옥호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학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75년연표보기 - 이성규 삼부자 효자문 건립
현 소재지 이성규 삼부자 효자문 -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옥호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이성규 삼부자 효자문 -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옥호리
성격 효자정려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옥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성규·이희천·이희창의 효자 정려.

[개설]

이성규(李聖規)와 아들 이희천, 이희창의 효자문은 순성면 옥호리에 있다. 이성규는 어려서부터 늘 부모 곁에서 식사를 했는데 항상 먼저 맛보고 음식을 드렸으며, 때때로 이웃 마을에 가서 과일과 고기를 따뜻한 가슴에 품고 돌아와 부모님께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더 살게 했다. 집이 매우 가난해서 손수 농사를 지어 부모를 봉양했고 옷은 모두 손수 지어서 입었으며, 어버이 공경에만 즐거움을 느끼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성규가 사망하자 지방 유림이 이성규의 효행을 관찰사에 보고하여 조정에서 동몽교관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이성규의 아들인 이희천과 이희창 또한 아버지가 위독하자 두 번이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약으로 썼으며, 대변을 맛보아 병의 차도를 살폈다고 한다. 1875년(고종 12)에 조정에서 이들 형제에게도 동몽교관의 벼슬을 내리고 삼부자의 정문을 당진시 순성면 옥호리에 세우도록 했다.

[형태]

정려각은 정면과 측면 각 1간으로 초익공식 가구에 맞배지붕으로 겹처마 건물이다. 박공[박공지붕의 옆면 지붕 끝머리에 '∧' 모양으로 붙여 놓은 두꺼운 널빤지] 밑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사면에 홍살을 돌리고 하방 아래는 시멘트로 고막이를 하였다. 기둥 위에는 창방을 놓았는데 1간마다 소로 7개를 놓고 소로 위에 3개의 망새[전통 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얹는 장식 기와]가 올려져 있다. 정려각 안에는 중앙 상단에 정려기가 걸려 있고 뒤쪽 및 좌우 벽 중방 위에는 각각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이성규 삼부자 효자문은 정려문을 세운 시기가 순성의 유력 가문으로 향촌 사회에 등장한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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