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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506
한자 務安朴氏
영어공식명칭 Muan Baksi|Muan Bak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무안(務安) - 전라남도 무안군
입향지 무안박씨 당진 입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 3통 어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무안박씨 당진 세거지 - 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 3통 어리
묘소|세장지 무안박씨 당진 세장지 -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2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박진승(朴進昇)
입향 시조 박지(朴智)

[정의]

박진승이 시조이고 박지가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무안박씨(務安朴氏)는 상서공파(尙書公派)이다. 입향조인 박지(朴智)[?~?]는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에 충절을 지키기로 다짐하고 우두동에 입향하여 세이암에 앉아 낚시로 소일하면서 농업과 학문에 종사하였다. 후손들은 크게 번성하여 당진의 유력한 성씨가 되었다.

[연원]

무안박씨의 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며 중시조는 시조의 34세손인 박진승(朴進昇)이다. 박진승은 고려 초기 국자감 제주(國子監祭酒)를 지냈고, 나라에 공을 세워 무안군(務安君)이 되었으며 전라남도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그 후 후손들이 무안을 관향으로 정하고 세거지로 삼았다.

박진승은 신라 54대 임금인 경명왕의 여섯째 아들인 완산 대군(完山大君) 박언화(朴彦華)의 5세손이다. 무안박씨가 세록지가(世祿之家)로서 본격적으로 흥성하기에는 박언화의 7세손에 와서다. 삼형제가 모두 조정에 출사하여 활약하는데, 공부 상서(工部尙書) 박문연(朴文衍)과 면성군(綿城君) 박문오(朴文晤), 호부 상서(戶部尙書) 박문정(朴文正)이 그들이다. 이들이 활약한 시기는 대략 1270년대로 추정되는데, 그 당시는 무신 집권기에서 몽고 간섭기로 접어드는 혼란기였다.

무안박씨는 수많은 파가 있는데 대부분 이들 삼형제를 중심에 두고 있다. 박문연의 후손들은 개성파라고 하여 현재 북한에 있다. 박문오의 후손들은 16개 파가 있는데 전국적으로 흩어져 살고 있으며 현재 해남, 진도 등지에 주로 거주한다. 당진의 무안박씨는 박문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당진의 무안박씨는 ‘상서공파(尙書公派)’라고 부른다. 박문정의 증손자가 바로 당진시 우두동 입향조인 박지다.

[입향 경위]

박지는 조선이 건국하자 출사를 거부하면서 고려의 충신으로 남기로 하였다. 박지는 가족을 이끌고 개성에서 무안으로 내려가는 길에 우두동 어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손들에게 조선 조정에 절대로 출사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고기를 잡고 낚시로 소일하면서 은둔 생활을 고집하였다. 박지에게는 ‘어조처사공(漁釣處士公)’이란 별호가 붙여졌다.

[현황]

입향조인 박지는 중시조 박진승의 10세손이며, 시조 박혁거세의 43세손이다. 박지는 다섯 명의 아들을 두었고, 이들에게서 다시 분파가 이루어졌다. 1파는 박지의 맏아들 박장(朴杖)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우두동 2통, 즉 ‘어리(漁里)’를 중심으로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가구가 무안박씨였는데 지금은 총 88호 정도에 65호가 박씨이다.

2파는 박지의 둘째 아들인 박교(朴橋)에서 시작하여 덕산과 당진시 채운동 금곡[운곡] 마을, 연기군 일원 및 당진시 사기소동 등지에 분포되었다. 3파는 박지의 셋째 아들인 박영(朴楹)의 후손들로 현재 당진시 원당동 정안과 탑동에 거주하고 있는데 약 45호 정도이다.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를 제외한 원주민을 중심으로 볼 때, 전체 80여 호 가운데 절반 정도가 무안박씨였다. 4파는 박지의 넷째 아들인 박제(朴梯)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우두동 1통에 거주하였는데 현재 타지로 나가고 10호 내외만 거주하고 있다. 5파는 박지의 다섯째 아들인 박정(朴楨)의 후손들인데, 당진시 채운동탑동읍내동에 흩어져 살고 있다.

[관련 유적]

1. 세이암(洗耳岩): ‘귀를 씻은 바위’라는 의미로 당진시 우두동 2통 어리(漁里)의 맨 끝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독고지[內道谷]’라는 지명의 산 뿌리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이 바위 아래로 역천(驛川)이 흘렀다고 한다. 썰물엔 역천이 흐르고, 밀물엔 바닷물이 들어왔다. 박지는 이곳에 앉아 물고기를 낚았다. 그리고 조선과 관련된 소식이 들리면 귀를 씻어 냈다고 전한다. 현재 세이암은 각종 공사로 훼손되었고, 흔적만 남아 있다.

2. 송정사(松井祠): 무안박씨의 사당으로 당진시 고대면 진관2리 선산 입구에 있다. 설립 연대는 1960년이다. ‘송정사’는 울창한 소나무가 주변에 있고, 산 아래에 깊은 우물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나무와 같이 사계절 푸름을 변치 않고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이 자손만대의 영원함을 기원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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