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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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蘆渚遺事 |
영어공식명칭 | Nojeoyusa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익 |
편찬 시기/일시 | 1940년 - 『노저유사』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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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940년 - 『노저유사』 3권1책으로 간행 |
소장처 | 고려 대학교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안암동 5가 1-2] |
소장처 | 미국 버클리 대학교 동아시아 도서관 - 해외권역 |
간행처 | 무무 서재 - 경성(京城) |
성격 | 시문집 |
저자 | 이양원(李陽元) |
편자 | 이능화(李能和) |
간행자 | 경성(京城) 무무서재(無無書齋) |
권책 | 3권 1책 |
행자 | 12행 26자 주쌍행(註雙行) |
규격 | 25.5×18.0㎝ |
어미 | 상하향 흑어미(上下向黑魚尾) |
권수제 | 노저유사(蘆渚遺事)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이양원의 시문집.
[개설]
『노저유사(蘆渚遺事)』의 서명은 ‘유사(遺事)’라고 하였으나 이양원(李陽元)[1526~1592] 본인의 저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구, 율시, 배율 등등 시의 장르는 자연을 벗하고 풍류를 읊은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도 수록되어 있는 가사는 선조 당시 대부분의 사류(士類)들이 동서로 분당되었을 때 초연히 당파를 초월하여 중립을 지킨 이양원을 가상히 여겨 왕이 주연을 베풀어 준 데 대한 고마움과 자신의 지조를 끝내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읊고 있다. 이 가사는 뒤에 이양원의 11대손인 한문학자이며 민속학자인 능화(能和)에 의하여 한역(漢譯)되었다. 『노저유사』는 고려 대학교 도서관과 미국 버클리 대학교 동아시아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이양원의 조선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백춘(伯春), 호는 노저(鷺渚), 시호는 문헌공(文憲公)이다. 형조판서, 대제학, 대사헌, 우의정, 영의정을 지냈다.
[편찬/간행 경위]
서(序), 편발문(編跋文), 발간사(發刊詞)를 쓴 간정(侃亭) 이능화(李能和)[1869~1943]가 전해오는 구본(舊本)의 『노저유사(蘆渚遺事)』에 여러 사료를 더하여 1940년에 편집, 간행하였다. 간사자(刊寫者)는 미상(未詳)이다.
[형태/서지]
3권 1책, 연활자본의 국역판이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20.1×13.6㎝], 12행 26자의 유계(有界) 형태이다. 책의 크기는 25.5×18.0㎝이다.
[구성/내용]
권1에 시 148수, 가사(歌辭) 2편, 시조(時調) 1수, 명 2편, 송(頌) 1편, 의문론대(疑問論對) 1편, 논(論) 1편, 기(記) 1편, 소(疏) 1편, 서패(書牘) 2편, 사문기록(師門記錄) 1편이 실려 있으며, 권2에는 종환년록(從宦年錄) 1편, 소(疏) 3편이 수록되어 잇다. 권3에 행장(行狀) 1편, 패명(碑銘) 1편, 유사(遺事) 1편, 발(跋) 1편, 가장(家狀) 1편, 연설(筵說) 1편, 시장(諡狀) 1편, 치제문(致祭文) 1편, 기(記) 1편, 부록(附錄)에 유사(遺事) 1편, 행록(行錄) 1편, 전(傳) 1편, 채방 사실(採訪事實) 1편, 정충은전(旌忠恩典) 1편, 고유문(告由文) 1편, 유사발(遺事跋) 1편이다. 부록에는 선세보(先世譜) 등 파보(派譜) 1편과 운잉록(雲仍錄) 5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양원의 영정과 문집은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이능화가 구본(舊本)을 엮어 편집한 『노저유사』를 편찬, 간행하여 국역하고 유사를 보충한 국역판 문집을 냈다. 이후 노저의 후인이며 종중 회장으로 있는 이명준의 주선으로 국역, 출판하게 되었다. 고서지 및 국문학과 한문학계에 학술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의 전통과 선현의 선비정신 등과 같은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남겨줄 만한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