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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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蘇州賈氏 |
영어공식명칭 | Soju Gasi|Soju Ga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남석 |
본관 | 소주(蘇州) - 중국 소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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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소주가씨 당진 입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리 |
세거|집성지 | 소주가씨 다진 세거지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리 |
묘소|세장지 | 소주가씨 당진 세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리 |
성씨 시조 | 가유약(賈維鑰) |
입향 시조 | 가세한(賈世漢) |
[정의]
가유약이 시조이고 가세한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소주가씨(蘇州賈氏)는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성씨이다. 중시조 가유약(賈維鑰)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병으로 와서 전사한 이후, 그 후손들이 명나라로 귀국하기 위해 태안반도 안흥항으로 왔지만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안흥에 정착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의 소주가씨는 이들이 해로를 따라 이동하여 정착한 성씨이다. 초락도에 세거지를 이룬 것은 약 100년 정도이고 현재 3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연원]
소주가씨는 중국의 성씨로 본래 주나라 문왕의 자손인 당숙우(唐叔虞)의 아들 공명(公明)이 가백(賈伯)[낙양, 소주 일대를 통치하던 제후]에 봉해짐으로써 성을 가씨라 하였고 소주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이 때문에 가씨 족보에도 본관을 소주로 하면서 입국 시조인 가유약(賈維鑰)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가유약은 명나라 신종 때 병부 상서를 지내다가 임진왜란 때 계요안찰사(薊遼按察使)로 원병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왔다가 안주 싸움에서 공을 세우고 귀국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다시 조선에 들어왔는데, 이때 아들인 유격장군 가상(賈祥)과 손자인 병부 종사관 가침(賈琛)을 데리고 왔다. 이들은 남원 전투에서 왜군을 격퇴시켰으나, 부산 동래에 이르러 가상은 전사하였고 아들을 구하려던 가유약도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가침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어 경상남도 울산시 서생진 도독동에 묘를 조성했다. 그 후 명군이 귀국할 때 묘를 두고 떠날 수 없다 하여 가침은 그대로 조선에 귀화했다. 얼마 후 가침의 아들인 가성(賈晟)이 중국에 돌아가기 위하여 태안반도 안흥항에 왔지만 귀국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정착하게 되었다.
소주가씨 문중의 주요 인물로는 가행건(賈行健)이 있다. 가행건은 19세기 헌종 때 충무위 부사용(忠武衛副司勇)을 지냈고 철종 때에는 충청도 안흥량진 수군 병마첨절제사(安興梁鎭水軍兵馬僉節制使)를 역임했다. 가행건은 주민들이 추운 겨울에도 전복과 해삼을 공물로 내고 있음을 보고 조정에 탄원하여 이를 철폐시킨 일도 있었다. 이에 백성들은 고역을 덜어 준 가행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송덕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입향 경위]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소주가씨는 중시조의 9세손인 가세한(賈世漢)[?~?]의 후손들이다. 이 때문에 세한파(世漢派)라 한다. 이들이 태안을 벗어나 초락도까지 온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문중의 발전과 분화 과정에서 해안선을 따라 이동해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입향조는 16세 가병관(賈秉寬)[1864~1896]이 대호지면 도이리로, 같은 16세 가병옥(賈秉玉)[1858~1910]이 초락도에 들어왔다고 한다.
[현황]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에 거주한 소주가씨는 대부분 농업과 어업에 종사 하였다. 1984년 대호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의 초락도는 어업이 활성화되어 주민들의 경제력도 높은 편이었으나 방조제 준공 후에는 단순 농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만 해도 초락도 2리에는 모두 130여 세대의 주민이 거주했는데, 그중 40여 세대가 소주가씨일 정도로 많은 종중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상당수 주민들이 대도시로 이주했고, 소주가씨의 인구도 점차 줄어 현재 초락도리 1구에 10여 호, 초락도리 2구에 20여 호만 거주하고 있을 뿐이다.
[관련 유적]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리에 소주가씨 문중 묘소가 있으나, 제향 시설이나 사당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