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609 |
---|---|
한자 | 金喆鎬 |
영어공식명칭 | Gim Chelh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남석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 김철호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김철호 합덕면사무소 면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 김철호 면천 향교 전교 취임 |
몰년 시기/일시 | 1960년 - 김철호 사망 |
출생지 | 김철호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
활동지 | 합덕면사무소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면 |
묘소 | 김철호 묘소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
성격 | 공직자 |
성별 | 남 |
본관 | 원주(原州) |
대표 경력 | 합덕면장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합덕면장.
[개설]
김철호(金喆鎬)[1879~1960]는 일제 강점기에 합덕면장을 지냈다. 합덕 평야의 근간이 되는 합덕 연호(蓮湖)[합덕 방죽]을 중수하고 관리하였으며, 농업용수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가계]
김철호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활동 사항]
김철호는 1912년 8월, 다섯 명의 동지와 함께 경비를 모아 합덕읍 합덕리에 있는 연호[합덕 방죽]를 수축하였다. 또한 다음 해에는 몽리 지역 지주들로부터 공사비 3만여 원을 모아 여수토(餘水吐)[잉여수를 돌려보내는 방수로 통로]를 만들고, 제방 내벽을 석축으로 완공하는 공사를 시행하였다. 이 공사는 합덕의 독지가인 유진상(兪鎭相), 조병학(曺秉學), 장두식(張斗植), 김종훈(金鍾勳)의 협조로 이루어졌다.
한말에 서울에 사는 한 사람이 합덕 방죽을 개인 소유로 만들려 하자, 김철호는 중앙의 농상공부를 왕래하면서 진정(陳情)하여 결국 공동 소유로 원상 복귀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김철호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합덕면장을 지냈고, 1943년에는 면천 향교 전교로 활동하였다.
[묘소]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