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603 |
---|---|
한자 | 文鍾龜 |
영어공식명칭 | Mun Jonggu |
이칭/별칭 | 수은(睡隱)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남석 |
출생 시기/일시 | 1853년 - 문종구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897년 - 문종구 사망 |
출생지 | 문종구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 |
거주|이주지 | 문종구 거주지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 |
묘소|단소 | 문종구 묘소 - 충청남도 당진시 수청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남평(南平) |
대표 관직|경력 | 서당 훈장 |
[정의]
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학자.
[개설]
문종구(文鍾龜)[1853~1897]는 한학자로 매우 청빈하게 살면서도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가계]
문종구의 본관은 남평(南平)이며, 호는 수은(睡隱)이다. 아버지는 문인배(文仁培), 어머니는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다.
[활동 사항]
문종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 서당을 다닐 수 없었다. 문종구는 서당 밖 뜰에서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천자문을 익혔고, 글을 좋아하는 문종구의 품성에 감동한 서당 훈장이 무료로 가르침을 베풀면서 학문의 길이 열렸다.
문종구는 재주가 비상하여 사서삼경을 비롯한 각종 경전을 암송하고 통달하여 막힘이 없었다. 문종구의 학문과 문장은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문명(文名)을 떨쳤는데, 충청남도 서북부 일대에서는 그를 ‘문수은(文睡隱) 선생’으로 부르며 추앙하였다.
문종구는 성균관에 머물다가 국운이 쇠퇴하자 시골로 내려와 당진·공주·예산·홍성군 일대를 순회하며 후진 교육에 힘써서 훌륭한 제자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대표적인 문하생으로 위당(偉堂) 전붕석(全朋錫)과 미산(嵋山) 안인식(安寅植)[1891~1969] 등이 있다. 평소 문종구는 많은 제자들을 훈육하면서도 청빈하여 재물을 모으지 못하였다. 문종구가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에서 사망하자, 문하생들이 비용을 거두어 장지를 마련하고 안장하였다. 또한 집과 전답을 매입하여 유족의 생계를 도왔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문종구의 저서로는 『수은집(睡隱集)』이 있다. 1929년에 문종구의 문인인 조순원(趙洵元)이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묘소]
문종구의 묘소는 충청남도 당진시 수청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