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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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起宗 |
영어공식명칭 | Gim Gichong |
이칭/별칭 | 중윤(仲胤),청하(聽荷),충정(忠定)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남석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김기종(金起宗)[1585~1635]은 광해군 때 증광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인조반정 이후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신시리에 묘소가 있다.
[가계]
김기종의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중윤(仲胤), 호는 청하(聽荷)이다. 아버지는 효자 김철명(金哲命), 어머니는 신백윤(申伯潤)의 딸 고령 신씨(高靈申氏)이다.
[활동 사항]
김기종은 1618년(광해군 10)에 증광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정자(正字)가 되었다. 이듬해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24년(인조 2) 도원수 장만(張晩)이 이괄의 난을 평정할 때 종사관으로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 조정에서는 김기종을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에 책록하고, 영해군(瀛海君)에 봉하였다. 김기종은 이괄의 난을 진압한 충청도의 3충신 중 한 명인데, 다른 두 명은 정충신(鄭忠信)[1576~1636]과 남이흥(南以興)[1576~1627]이다.
김기종은 청렴하고 행동을 조심하여 과거에 급제한 지 12년 만에 호조 판서에 올랐다. 1635년(인조 13)에 5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기종의 저서로는 『서정록(西征錄)』이 있다.
[묘소]
김기종의 묘소는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신시리 어시산(於是山)에 있다. 묘비는 1995년에 세웠으며, 비명은 김기종의 10세손 김진해(金振海)가 지었다.
[상훈과 추모]
김기종이 사망하자 조정에서는 ‘의정부 영의정 영해 부원군(議政府領議政瀛海府院君)’으로 추증하였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