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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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礪 |
영어공식명칭 | Hong Ryeo |
이칭/별칭 | 당성위(唐城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상거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남석 |
몰년 시기/일시 | 1533년 - 홍려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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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홍려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상거리 |
거주|이주지 | 홍려 거주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상거리 |
수학지 | 홍려 수학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상거리 |
묘소|단소 | 홍려 묘소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남양(南陽) |
대표 관직 | 당성위(唐城尉) |
[정의]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의 부마.
[개설]
홍려(洪礪)[?~1533]는 조선 전기 중종(中宗)의 부마이다. 작서의 변[灼鼠之變]에 관련되었다는 김안로(金安老)의 무고(誣告)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가계]
홍려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아버지는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홍서주(洪敍疇)[1499~1546]이며, 할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홍숙(洪淑)[1464~1538]이다.
[활동 사항]
홍려는 1525년에 중종의 딸인 혜정 옹주와 혼인하여 종2품의 품계인 가의 대부 당성위(唐城尉)에 봉해졌다. 홍려는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작서의 변’에 연루되었다고 김안로가 무고하여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작서의 변’은 1527년(중종 22) 쥐를 잡아 동궁(東宮)[인종(仁宗)]을 저주한 사건으로, 중종의 빈이었던 경빈 박씨(敬嬪 朴氏)가 주동자로 지목되어 경빈 박씨와 아들 복성군(福城君), 사위 홍려(洪礪) 등이 죽음을 당하였다. 후일 이 사건은 김안로와 김안로의 아들 희(禧)의 무고로 밝혀졌고, 홍려의 누명도 벗겨져 신원(伸冤)되었다.
[묘소]
홍려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선영에 혜정 옹주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홍려는 1532년 신원되었으나 후손이 없으므로, 외가인 파평 윤씨 집안에서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올렸다. 1884년(고종 21)에 홍려 동생의 후손들이 부조묘(不祧廟)[조선 시대의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를 당진시 송산면 상거리로 옮겨 왔고,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1985년에는 묘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