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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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慶一孝子門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Monument House for the Filial Piety of Sin Gyeongi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남석 |
건립 시기/일시 | 1748년 - 신경일 효자문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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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신경일 효자문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 |
원소재지 | 신경일 효자문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 |
성격 | 정려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양식 |
정면 칸수 | 1간 |
측면 칸수 | 1간 |
소유자 | 평산 신씨 종중 |
관리자 | 평산 신씨 종중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신경일의 효자 정려.
[개설]
신경일(申慶一)[1675~1735]은 1675년 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서 아버지 신기와 어머니 한양 조씨 사이의 4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신경일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였다. 또한 형제간에 우애 깊고 어른에 대한 예의가 남달랐다. 신경일이 열 살 때 어머니가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유명한 의원을 불러 진료를 맡겼고, 좋은 약을 구해 치료했으나 차도가 없었다. 신경일은 문틈에 손가락을 넣어 짓이긴 후에 피를 내어 어머니의 입에 흘려 넣었고, 그 후 신경일의 어머니는 원기를 되찾았고 병이 완쾌되어 66세까지 살다 사망하였다. 신경일의 효행은 인근 마을에 전해졌고, 당진군 내에서도 ‘신 효자공(申孝子公)’이라고 하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위치]
신경일 효자문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 3리 ‘다릿길’ 마을 입구에 있다.
[건립 경위]
조선 후기 우의정이던 민진원(閔鎭遠)[1664~1736]이 신경일의 효행을 듣고 조정에 알려 효자문을 세우게 하였다고 전한다. 효자 정려는 1748년(영조 24)에 세웠다.
[형태]
신경일 효자 정려는 정면 1간, 측면 1간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을 갖추고 있다. 정면과 측면은 하방 밑까지 시멘트로 시설하고 그 위에 홍살을 설치하였다. 뒷면은 시멘트 벽으로 되어 있다. 기둥 위로는 익공 계열의 간소화된 공포가 있으며, 창방과 고리 사이에는 운판이 놓여 있다. 지붕은 현대식 기와가 올려져 있다. 효자 정려 안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정면에는 ‘효자 십세 동자 신경일지문(孝子十歲童子申慶一之門) 영묘(영조) 무진 명정(英廟-英祖-戊辰命旌)’이라고 적혀 있으며, 정려 좌측에는 신각균이 쓴 정려 중수기가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