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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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車天輅影堂 |
영어공식명칭 | Ancestral Shrine for Cha Cheonlo |
이칭/별칭 | 문원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 41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남석 |
건립 시기/일시 | 1790년 - 차천로 영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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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6년 - 차천로 영당 중수 |
현 소재지 | 차천로 영당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 410 |
원소재지 | 차천로 영당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 410 |
성격 | 사당 |
소유자 | 연안 차씨 오산공파 |
관리자 | 연안 차씨 오산공파 |
문화재 지정 번호 | 당진군 지방 문화재 제2호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에 있는 차천로를 배향하는 사당.
[개설]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1556~1615]의 후손들은 충청남도 당진지 대호지면 적서리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문원사(文苑祠)를 세우고, 조선 선조 때의 대문장가였던 차천로의 영정을 봉안하여 학문과 사상을 기리고 있다.
[위치]
문원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 410번지 ‘안붉쥐’ 마을에 있다. 대호지면 적서리는 대호지면사무소가 있는 조금리에서 647번 지방 도로를 이용해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리 방향으로 약 6㎞ 정도 이동하면 있다.
[변천]
문원사는 연안 차씨 오산공파 후손들이 1958년 건립하였다. 원래 있던 사당이 협소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쇠락(衰落)해져 가는 것을 다시 중수한 것이다.
[형태]
문원사 정문으로 들어가면 안에 기와 건물의 제각이 있고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은 차천로의 13대손 차영렬(車英烈)이 썼다.
[현황]
문원사는 차천로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향하는 영각(影閣)이다. ‘문원사’라 한 것은 차천로가 워낙 문장이 뛰어나, 문원(文苑)[홍문관, 예문관]의 의미를 인용한 것이라 한다. 원래 대호지면 적서리는 연안 차씨 오산공파 후손들의 집성촌이었다. 차천로의 증손인 차건의(車乾義)가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이곳에 낙향하여 정착한 것이다. 후손들은 1790년(정조 14)에 사당을 건립하여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후 이들은 차천로의 영정을 입수하면서 사당을 개수하여 영정을 봉안하고 ‘문원사’라 명명하였다. 원래 영정은 선조 때의 인물화가 이신흠(李信欽)[1570~1631]이 그린 것으로, 차천로는 당시 40세 무렵이었다. 차천로의 영정은 이정구(李廷龜)[1564~1635]의 후손이 보관하고 있었는데, 차천로의 후손인 차긍래(車肯來)가 1893년 입수하였고 차영렬이 정식으로 인수받아 1924년에 봉안한 것이다. 하지만 사당이 매우 협소하여 새로운 영각의 건립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영각 신축을 위한 모임은 1956년에 결성되었고, 위원장에 차영렬이 선임되었다. 이들은 1957년 대지 확장과 건축 자재 확보에 착수하였고, 도목수 인성환과 부목수 차기태는 1958년 상동(上棟)을 준공하였다. 그리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문원사는 3차에 걸쳐 중수하였다. 1차는 1978년 단청을 하였고, 2차는 1984년 유홍수 충청남도 도지사와 당진 군수 박승선의 도움으로 중수하였으며, 3차는 1996년 당진군 지방 문화재 제2호로 2,200만 원의 지원비를 받아 중수하였다.
[의의와 평가]
제향은 매년 음력 11월 15일에 올리고 있다. 초기에는 해미 향교와 면천 향교의 유림이 제향을 담당하였으나, 차천로의 영정을 봉안한 뒤로는 당진 향교 유림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차오산 선생 경모회’를 조직하여 제사를 향교 제례식으로 지낸다. 차천로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