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20 |
---|---|
한자 | 松鶴里長明燈 |
영어공식명칭 | Songhak-ri Stone Lantern |
이칭/별칭 | 송학리 석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학로 |
건립 시기/일시 | 1544년 - 송학리 장명등 건립 추정 |
---|---|
이전 시기/일시 | 1985년 - 송학리 장명등 이전 |
현 소재지 | 송학리 장명등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송학리 소리벌 뒷산 |
원소재지 | 송학리 장명등 - 경기도 남양주시 |
성격 | 석등 |
양식 | 기단과 옥신석, 옥개석 두 부분으로 나뉘고 4면의 창을 둠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38㎝[옥신석 가로]|80㎝[옥개석]|144㎝[전체 높이]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해주 오씨 문중 묘역에 돌로 만들어 세운 등.
[개설]
장명등(長明燈)은 분묘 앞에 세운 네모진 모양의 석등이다. 무덤 앞이나 사찰의 경내에 세워진 장명등은 받침대와 몸체 부분·지붕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명등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묘역이나 건물의 외부 공간을 밝히는 데 있으나, 분묘의 장명등은 조선 시대 피장자의신분을 표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건립 경위]
분묘 앞에 장명등을 세우게 된 경위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조선 시대의 분묘 제도에 의하면 분묘 앞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나 문무신상(文武神像) 등의 석조물을 세우는 기준은 피장자의 신분 혹은 품계에 따라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장명등의 경우는 1품 재상(一品宰相)에 한하여 세울 수 있도록 한정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와 같은 묘제가 확립된 시기부터 장명등이 세워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송학리 장명등은 피장자의 벼슬이 1품 재상이 아닌 종2품의 가선대부라는 점에서 피장자와 직접 관련된 유물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위치]
송학리 장명등은 1985년 해주 오씨 묘역을 조성하면서 남양주에서 분묘를 이장하여 함께 옮겨 왔다고 한다. 현재는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송학리 소리벌 뒷산 해주 오씨 묘역에 있다.
[형태]
송학리 장명등은 기단부와 옥신석 한 덩이, 옥개석 한 덩이의 돌로 만들었는데, 지대석은 없으며 상륜부도 생략하고 옥개석의 윗부분을 장식성이 있게 변형하였다. 옥신석은 가로 세로 38㎝ 크기의 돌에 요철을 두었고 화창(火窓)은 전후좌우 각 1개씩 냈다. 옥개석은 한 면의 길이가 80㎝ 정도 되는데 장식성이 강하게 변형을 하였다. 전체 높이는 지면에서 144㎝ 정도다.
[현황]
송학리 장명등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송학리 해주 오씨 묘역에 설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송학리 장명등은 당진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장명등으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