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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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唐津客舍 |
영어공식명칭 | Dangjin Gaeksa |
이칭/별칭 | 당진 객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학로 |
이전 시기/일시 | 1913년 - 당진객사 당진 공립 보통학교 교사로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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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당진 천주교 성당 - 충청남도 당진시 서문2길 28[읍내동 507-2] |
성격 | 객사|관리 숙소 |
정면 칸수 | 27간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옛 당진읍성에 있었던 조선 시대 관사(館舍).
[개설]
당진객사는 옛 당진읍성 안에 있던 객사이다. 공적 업무를 위해 출장 온 관리들의 숙박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객관(客館)이라고도 한다. 『고려사』에는 고려 말 1279년(충렬왕 5) 8월부터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당진객사는 조선 초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진객사와 관련된 기록은 『세종실록』에 처음 나오는데 자세하지는 않고, 『충청도 읍지』 당진현 조에는 당진객사가 27간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진군사』(1937)에 의하면 "조선 시대 태종 때 각 군현에 객사를 건설하고 전패(殿牌)를 봉안하고 군수가 하례하였는데 신임 현감도 부임 후 3일 이내에 참배하도록 했다."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으며,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다. 관찰사가 일을 보는 동헌보다 격이 높았으며, 관리는 이곳에 머물면서 교지(敎旨)를 전하기도 하였다.
[위치]
당진객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서문 2길 28[읍내동 507-2]의 천주교 당진 성당 자리에 있었다.
[변천]
조선 초 태종 때 각 군현에 객사가 설치되면서 당진객사도 그 즈음에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3년 당진 공립 보통학교 설립 인가 요청 계획에 "당진객사를 교사로 전용하여 학교 사무실로 사용한다."라고 되어 있다. 당진 공립 보통학교 교사로 쓰이던 당진객사는 1936년 당진 공립 보통학교가 이전하고 천주교 성당이 들어선 이후 천주교 신부의 사제관으로 쓰였다.
[형태]
당진객사의 구조는 82간의 면천 객사에 비해 작았는데, 일반적인 객사의 구조에 따라 본사(本舍)를 중심으로 좌우에 부속 건물로 익사(翼舍)를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천주교 당진 성당이 들어서면서 건물은 철거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당진객사의 현판은 '망신관(望宸館)'이라 하였는데, 건물이 헐리면서 현판은 천주교 측의 기증으로 당진 향토 문화 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당진객사는 당진현에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던 곳으로, 당진현의 행정적 기능과 조정의 통치 체계를 일원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시설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