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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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多佛山 |
영어공식명칭 | Dabyulsan Mountain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송학리|면천면 사기소리|면천면 죽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여창 |
전구간 | 다불산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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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다불산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송학리~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죽동리 |
성격 | 산 |
높이 | 321m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서북쪽 송학리, 사기소리, 죽동리에 걸쳐 있는 산.
[명칭 유래]
다불산(多佛山)은 예로부터 산에 부처[弗]가 많아서[多] ‘다불산’으로 불렸다. 내포 지역의 서해 쪽 관문인 서산, 당진 지역은 예부터 중국으로부터 불교의 백제 전파 경로에 있었기 때문에 불교와 관련된 유적과 지명이 많다. 유물로는 국보 제84호인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을 비롯하여 보물 제100호인 당진 안국사지 석조 여래 삼존 입상(唐津安國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 등의 불상이 많다. 특히 내포 지역은 미륵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충청도 읍지』(1845) 면천군 산천 조에 “다불산이 군 서쪽 10리에 있다(多佛山在郡西十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면천 조에도 “다불산은 관아의 서쪽 10리에 있다. 소이산(所伊山)에서 뻗어 나온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 면천 산수 조에도, "다불산이 서북쪽 15리 지점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 지도』,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 『1872년 지방 지도』, 『조선 지형도』[면천]에 모두 ‘다불산(多佛山)’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선 지지 자료(朝鮮地誌資料)』 면천 편에는 다불산이 "송암면 송평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 조에 “다불산에 보회사가 있다(保會寺在多佛寺)[사(寺)는 산(山)의 오기로 보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다불산’이라는 지명은 적어도 500년 이상 된 것이다. 실제로 다불산에는 보회사 터와 가까운 곳에 미륵암 터가 있다. 이 터에는 큰 주춧돌과 기와, 자기 파편이 남아 있는데, 옛날에 커다란 미륵이 서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자연환경]
다불산은 소나무가 많고 봄에는 진달래가 많이 피며, 현재는 잡목과 한데 어울려 있다.
[현황]
높이 321m의 다불산(多佛山)은 동쪽으로 아미산(蛾嵋山)과 몽산(夢山), 서쪽으로는 이배산(離背山)과 연결된다.
다불산은 산봉우리가 잘려나간 듯 오목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전설이 있다. "먼 옛날 면천의 산줄기가 나뭇고개[면천 삼웅리에서 면천 시내로 넘어가는 고개]로부터 다불산으로 건너오는 동안 몽산은 여자로 변신하고, 아미산과 다불산은 남자로 변신했다. 아미 남자와 다불 남자는 몽산 여자를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싸웠다. 신령이 보기에 참으로 고약한 일이어서 두 남자를 불러다 호통을 치니, 아미 남자는 진심으로 산이 되겠다고 맹세하고 아미산이 되었고, 다불 남자도 그러겠다고 맹세한 뒤 다불산이 되었다. 그 후로 아미 남자는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맹세한 바를 잘 지켜 나갔으나 다불 남자는 겉모양만 산이 되었지 여전히 흑심을 버리지 않았다. 다불산의 그러한 속마음을 알아챈 신령은 크게 노해 무시무시한 천둥 번개를 일으켜 다불산의 목을 잘라 몽산 앞에 떨어뜨려 놓았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지금도 성상리 작골 마을에는 다불산의 잘린 목이 남아 있는데, 작은 당재가 바로 그 목이라 전하며 일명 심술 당재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