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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237
한자 悉直郡
영어공식명칭 Siljikgu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도현

[정의]

고구려 장수왕이 지금의 삼척시인 실직 지역을 확보한 뒤 설치한 지방 행정 조직.

[개설]

『삼국사기』에는 ‘실직군’ 관련 기사가 두 차례 등장한다. 고구려에 속하여 실직군이었음을 보여 주는 권 제37 잡지(雜志) 제6 지리(地理) 4 고구려 하슬라주(何瑟羅州)조에 실린 실직군 관련 기록과 신라가 중사를 지내는 4해(四海) 가운데 북해를 비례산에 설치하였는데 비례산실직군에 있다고 소개한 기록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5세기에 들어와 고구려장수왕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뒤 강력한 남하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하여 나제동맹을 체결하였다. 신라는 나제동맹을 배경으로 그때까지 고구려와의 우호 관계를 청산하고 변경에서 고구려를 대상으로 군사 도발을 감행하였다. 450년(눌지마립간 34) 7월 신라의 하슬라(何瑟羅)[지금의 강릉] 성주(城主) 삼직(三直)은 실직 원야(原野)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고구려 변장(邊將)을 습격하고 살해하였다.

이 사건을 빌미로 고구려는 신라 공세를 본격화하였으며, 신라와 고구려는 실직 지역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 결과 고구려는 468년(장수왕 56) 2월 마침내 신라의 전략 거점인 실직성(悉直城) 함락에 성공하였다. 장수왕은 이 전투에 고구려군 이외 말갈병 1만 명을 거느리고 직접 참전하였다. 당시 고구려의 신라 공격은 대부분 말갈과의 연합에 의해 이루어졌다. 실직 지역을 확보한 고구려는 실직군(悉直郡)을 설치하고 하슬라주(何瑟羅州)에 편입시킴으로써 동해·삼척 지역은 고구려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신라는 5세기 초 지증왕대에 고구려로부터 실직 지역을 되찾았다. 이는 신라가 505년(지증왕 6) 2월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은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관련 기록]

1. 고구려에 속한 실직군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7 잡지(雜志) 제6 지리(地理) 4 고구려(高句麗) 하슬라주의 주·군·현·성

실직군[일운(一云) 사직(史直)], 죽현현(竹峴縣), 만약현(滿若縣), 파리현(波利縣), 우곡현(羽谷縣), 우진야현(于珍也縣)[울진], 우시군(于尸郡)[영해], 아혜현(阿兮縣)[청하], 야시홀군(也尸忽郡)[영덕]” 등이 보이는데, 이는 동해안 전체를 장악한 후 하슬라주를 설치하고 그 밑에 군·현을 속하게 한 것이다.

2. 중사로 지내는 4해 가운데 북쪽 비례산실직군 관련 기록

사해(四海), 동아등변일운근오형변(東阿等邊一云斤烏兄邊), 퇴화군(退火郡), 남형변거칠산군(南兄邊居柒山郡), 서미릉변시산군(西未陵邊屎山郡), 북비례산실직군(北非禮山悉直郡).

[변천]

신라가 실직 지역을 점령한 후에도 고구려, 백제, 말갈의 신라 북경(北境) 침입은 계속되었다. 이에 따라 마침내 658년(태종무열왕 5) 3월 신라는 하슬라 지역이 말갈과 연접해서 백성이 편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소경(小京)을 폐지하고 주(州)를 설치하여 도독(都督)을 두고 진수함과 동시에 실직에는 북진(北鎭)을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서 실직에 있던 주치(州治)도 다시 하슬라로 이동하고, 주명(州名)도 이때부터 하서주(河西州)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실직 지역은 하서주 도독 관할 아래의 실직군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이와 함께 북진이 설치됨으로써 신라 동북부 변경 지대의 전략 거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실직군’이란 지역명을 통해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지대에 위치하여 전략 거점으로 여겨진 지역이 삼척시였음을 알 수 있고, 신라의 국가 제장 가운데 북해에서 중사를 지냈는데 그 위치 또한 실직군이라 하였다. 이를 통하여 고구려와 신라에서 ‘실직군’이란 지역명을 함께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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