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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231
한자 三國時代
영어공식명칭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배재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468년(장수왕 56) - 실직군 설치
특기 사항 시기/일시 505년(지증왕 6) - 실직주 설치
특기 사항 시기/일시 757년(경덕왕 16) - 삼척군 설치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의 삼국시대·남북국시대 역사.

[개설]

102년 실직국의 항복으로 삼척 지역을 차지한 사로국(斯盧國)[신라(新羅)]은 초기에 간접 지배를 하였지만 4세기 이후에는 직접 지배를 하였다. 그러나 삼척 지역은 5세기 후반에 들어와 고구려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 후 신라는 6세기 초에 삼척 지역을 되찾은 뒤 505년에 실직주를 설치하였다가 556년 무렵 실직군으로 개편하고 658년에 북진을 설치하였다. 실직군은 757년에 삼척군으로 개명되었다. 신라 하대에 와서는 명주군왕 김주원의 가문 식읍이 되어 이들 가문의 실효 지배를 받았다.

[5세기 이전 신라의 실직 지역 지배]

삼척 지역에 존재하던 소국인 실직국(悉直國)이 102년(파사이사금 23) 신라에 병합됨으로써 삼척 지역은 신라의 북쪽 변경지대가 되었다. 신라는 실직국이 자진 항복한 만큼 실직국 지역을 지방 행정구역으로 편입시켜 직접 지배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의례에 그친 공납을 매개로 지배·피지배의 신속(臣屬) 관계만 맺고는 기존의 실직국 토착 지배 세력의 자치를 허용하는 간접 지배를 한 것으로 짐작된다.

4세기에 들어와 신라가 여러 소국의 병합을 완료하고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시켜 감에 따라 실직국 지역도 점차 독자성을 해체 당하고 성(城) 또는 촌(村) 단위로 편제(編制)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함께 신라는 실직 지역의 유력자를 성 또는 촌의 간지(干支)로 임명하여 지배한 것으로 짐작된다.

[고구려의 실직군 설치]

5세기에 들어와 고구려의 남하 정책이 실시되면서 468년(장수왕 56) 2월 신라의 전략 거점 실직성(悉直城)이 함락되었다. 실직 지역을 확보한 고구려는 실직군(悉直郡)을 설치하고 하슬라주(何瑟羅州)에 편입시켰다. 이로써 삼척 지역은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었다.

[신라의 실직주 설치]

신라는 6세기 초 지증왕대에 와서 고구려로부터 실직 지역을 되찾았다. 이에 따라 신라는 505년(지증왕 6)에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임명하였다. 이 실직주는 신라가 최초로 지방에 설치한 주로, 영역이 있는 광역의 주 성격보다 군주가 거느리는 군단 소재지로서의 정(停) 의미가 강하였다. 이에 따라서 군주는 실직 지역의 촌락 통치를 위하여 파견된 순수한 지방관보다 군사 목적의 필요성에 의하여 군단을 거느리고 중앙에서 파견된 군단장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후 512년(지증왕 13)에 이사부가 하슬라주 군주로서 우산국(于山國)을 정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실직에 있던 주치(州治)가 하슬라[지금의 강릉]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524년(법흥왕 11)에 건립된 울진신라봉평비에 실지(悉支)[실직] 군주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512년과 524년 사이 어느 시기에 하슬라로 이동한 주치가 다시 실직으로 이동해 온 것으로 보인다. 주치가 하슬라로 이동할 때 실직주가 폐지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실직주를 폐지하지 않고 존속시킨 채 하슬라주를 새로 설치하고 이사부를 하슬라주 군주로 임명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실직주 군주는 실직 지역뿐만 아니라 울진 지역까지 관할하였다. 하슬라로 이동한 주치가 다시 실직으로 이동해 온 이후에는 하슬라 지역까지 관할 범위 안에 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실지[실직] 군주 밑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인 실지[실직] 도사(道使)가 있었다. 실직 지역에는 5명의 도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도사는 실지[실직] 군주의 관할 아래 각 자연촌의 유력자인 사인(使人)을 매개로 지방 통치를 관철(觀徹)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직군 설치]

6세기 중엽인 556년(진흥왕 17)경에 실직 지역은 실직군으로 개편되었다. 아마 진흥왕대의 활발한 정복 전쟁에 따라 신라 영역이 강릉 이북 지역으로 확대됨으로써 실직 지역 군사력의 중요성이 다소 감소됨에 따른 행정 단위 조정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직군에는 지방관으로 사대등(使大等)[당주(幢主)]이 파견되어 행정 및 군사 업무를 총괄하였다. 사대등 아래에는 도사들이 각 지역에 파견되어 해당 지역의 행정 및 군사 업무를 담당하였다.

[북진 설치]

고구려·말갈의 신라 북쪽 국경 침입이 계속되자 658년(태종무열왕 5) 신라는 강릉의 북소경(北小京)을 폐지하고 주(州)를 설치해서 도독(都督)을 두어 진수함과 동시에 실직에는 북진(北鎭)을 설치하였다. 이후 실직 지역은 하서주(河西州)[지금의 강릉] 도독 관할 아래의 실직군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이와 함께 북진이 설치됨으로써 신라 동북쪽 변경의 전략 거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삼척군 설치]

757년(경덕왕 16)에 주·군·현이 개혁될 때 실직군은 삼척군(三陟郡)으로 개명되었다. 당시 삼척군에는 죽령현, 만경현[망향현], 우계현, 해리현 등 4개 영현(領縣)이 있었다. 이에 따라 삼척군에는 태수가 임명되고 각 영현에는 장관으로 현령 또는 소수(少守)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함께 삼척군과 각 영현은 몇 개의 촌을 거느렸으며, 각 촌에는 현지 유력자인 촌주(村主)가 있어서 태수 및 현령 또는 소수를 보좌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호족 지배]

신라 하대에 들어와 김주원이 명주군왕에 봉해지자 이후 삼척 지역은 김주원 가문의 식읍(食邑)이 되어 그들의 실효 지배를 받게 되었다. 삼척 지역에도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호족 세력이 존재하였음을 보여 준다. 신라 말 고려 초의 인물로서 고려태조로부터 삼한벽상공신에다 실직군왕(悉直郡王)에 봉해졌다고 하는 삼척김씨 시조 김위옹(金渭翁)이 당시 삼척 지역의 호족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삼척 지역의 호족은 인근 강릉에서 명주군왕을 칭한 왕순식(王順式)[본명은 김순식(金順式)]과 일정한 연계를 맺고 활동한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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