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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달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166
한자 所達面
영어공식명칭 Sodalmye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651년(효종 2)연표보기 - 소달리면(所達里面)으로 칭함
폐지 시기/일시 1963년 1월 1일연표보기 - 도계리를 중심으로 한 도계읍이 신설되면서 소달면 행정 구역 명칭은 폐지됨
성격 고지명

[정의]

강원도 삼척시 서남부에 있던 행정 구역 명칭.

[개설]

1651년(효종 2) 소달리면(所達里面)이라 칭하였다가 나중에 소달면으로 개칭하였다. 석탄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1963년 1월 1일 도계리를 중심으로 한 도계읍이 신설되면서 소달면 행정 구역 명칭은 폐지되었다.

[명칭 유래]

1630년(인조 8)에 삼척부사 이준(李埈)이 소달산의 이름을 따서 소달리면(疎達里面)이라 하였는데 당시 소달동의 작은 촌락 명칭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형성 및 변천]

1901년부터 1910년까지는 고사리(古士里)를 기점으로 위쪽을 상소달(上所達)이라 하고 그 아래쪽을 하소달(下所達)이라 불렀고, 1914년 읍·면·동 행정 구역 개편 때 다시 소달면이 되었다. 1914년 12월 4일 소달면사무소는 대평리(大坪里)로 이전하였고, 1919년 6월 6일 대평리에서 고사리 103번지로 다시 이전하였다. 1962년 11월 21일 소달면(所達面)을 승격하여 도계리의 이름을 따서 읍 소재지를 도계읍(道溪邑)이라 개명하였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소달면은 삼척시 서남부에 위치하였고, 동쪽 일대는 육향산 산줄기가 북으로 뻗은 가운데 노곡면과 경계를 이루었고, 서쪽은 두타산 산줄기가 남으로 뻗어 분수령을 이루며 하장면과 접하였다. 북쪽으로는 미로면, 남쪽으로는 태백시 및 원덕읍과 각각 접하였다.

1914년 이전의 소달면은 수로(壽老), 구미(九味), 서하(西下), 고무릉(古武陵), 대기(大基), 대이(大耳), 신기(新基), 사무(士武), 대평(大坪), 안의(安衣), 거제(巨濟), 마차(馬次), 발리(鉢里), 차구(次口), 한내(汗乃), 상고사(上古似), 하고사(下古似), 눌구(訥口), 장탄(長灘), 서동(瑞洞), 산기(山基), 무중(武仲), 점동(店洞), 소달산(所達山), 마교(馬橋), 배목(排木), 신리(新里), 황조전(黃鳥田), 역덕전(驛德田), 도계(道溪), 전두(田頭), 응암(應岩), 고기(高基), 심포(深浦), 구사(九士) 등 39개 리를 관장하였다.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신기, 서하, 고무릉, 대이, 대기, 발리(發里), 차구, 산기, 안의, 대평, 마차, 무건(武巾), 고사, 한내, 점리(店里), 눌구, 마교, 도계, 흥전(興田), 전두, 상덕(上德), 황조, 신리, 구사, 심포의 25개 리로 개편되었다.

[관련 기록]

『한국독립운동사자료』 11권에 따르면 1908년 5월 9일 삼척군 소달면(所達面) 신리동(新里洞)에서 의병 500여 명이 일본군 토벌대와 교전하였지만 의병 62명이 전사하고 30명이 부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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