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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073
한자 鳳凰山
영어공식명칭 Bonghwangsan
이칭/별칭 봉황대,호악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집필자 김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봉황산 -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지도보기
성격
높이 149m

[정의]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에 속하는 산.

[개설]

봉황산강원도 삼척시 정라동에 있는 해발고도 149m의 산이다. 과거 호악이라고도 불렀으며, 삼척읍내 주민들의 수호신격인 미륵 3불이 있다. 현재는 오랍드리 산소길의 제2코스가 개설되어 있다.

[명칭 유래]

봉황산 남쪽 절벽 아래는 오십천이 휘몰아치면서 큰 소를 이루었는데 이를 봉황담이라 했다. 삼척부사 허목(許穆)이 쓴『척주지』에서는 봉황지(鳳凰池)라 하였다. 따라서 봉황지를 끼고 있는 산이란 의미이다.

[자연환경]

봉황산은 삼척시남산을 절개한 오십천 수로 변경 공사 이전에는 오십천의 공격사면에 해당되던 곳이어서 하식애(河蝕崖)가 발달되었다. 하식애 밑에 형성되는 소가 봉황지이다. 봉황산은 고생대 캄브리아기의 조선누층군으로 석회암과 돌로마이트 등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현황]

봉황산은 북쪽에 있는 해발고도 137m의 광진산이 남쪽으로 이어지다가 다시 솟은 산으로 작지만 험준하다. 봉황산봉황대(鳳凰臺)라고도 부른다. 허목(許穆)이 쓴 『척주지』에 기록이 있다. “삼척부 동쪽 3리[약 1.2㎞] 지점에 있다. 오십천이 흘러 모여 담(潭)을 이루었다.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 가물면 비를 빌었다. 호악(虎岳)이라고도 한다.” 현재 산 동쪽의 일부분은 낭떠러지로 되어 있어 벼락바위라 하고 서쪽은 호악이라 한다.

절벽 아래는 오십천이 휘몰아치면서 큰 소를 이루었는데 이를 봉황담이라 한다. 『척주지』에서는 봉황지(鳳凰池)라 하였다. 정상부에는 봉황대(鳳凰臺)라는 옛터가 남아 있으며, 신선각(神仙閣)이 있었다. 봉황산 남쪽은 옛날 마목평(馬牧坪)이라 하여 사직역(史直驛)의 목마를 방목하던 곳이었다. 북쪽에는 삼척포 진영의 둔전(屯田)을 이용하던 제언 동대지(東臺池)가 있었다. 전술한 한 바와 같이 호악이라고 불리웠던 봉황산 뒤편에는 조선시대 동해안의 해상 방위를 총괄했던 삼척포진(三陟浦鎭)이 있었고, 그 배후 언덕에 사형장이 있었다. 이 때문에 동해안 수군의 죄수들은 모두 삼척으로 압송되어 재판과 함께 형을 받았다. 그런데 사형을 당한 죄수들의 사악한 영혼이 봉황산 자락을 타고 내려와 삼척읍내에 온갖 재앙을 일으키는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고 전해졌다. 그래서 삼척향교에서 인재가 나오지 못하고 삼척읍내에 갖가지 재앙이 나타나자 1835년 삼척부사 이규헌(李奎憲)봉황산 자락에 ‘미륵 3불’을 세워 봉황산 정상을 바라보게 해서 사악한 기운을 막았다고 『척주지』에서 전하고 있다. 그 후 삼척 봉황산 미륵삼불은 삼척읍내 주민들의 수호신격으로 신봉되며 지역 주민들의 집단적인 신앙체 역할을 했다. 이 삼척 봉황산 미륵삼불은 조선 후기 미륵불 중에서 지역적 특성이 강한 조각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에 복제품이 전시되는 등 미술사적 관점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때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 도로 건설 문제로 삼척시립박물관으로의 이전이 논의되었지만, 원래 있던 국립민속박물관에 그대로 있다.

봉황산 일대는 삼척시 교동 택지와 정라동, 남양동 등 삼척 시내권 중심부에 위치하며,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여 삼척시민 뿐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삼척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뿐만 아니라 봉황산 삼림욕장이 개설되어 곳곳에 맨발로 걷는 길,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의자, 쉴 수 있는 정자, 운동 기구 등 각종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봉황산 일대는 삼척 시민들의 체력 단련과 여가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삼척시에서 개발한 총 20㎞(5코스)의 ‘오랍드리 산소길’의 제2코스[봉황산길]가 바로 봉황산에 있다. 오랍드리는 ‘집주변, 마을’이란 삼척시의 방언이다. 그래서 오랍드리 산소길은 삼척 시가지 외곽길을 연결하는 일종의 둘레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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