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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412
한자 三陟鄕校
영어공식명칭 Samcheok Hyanggyo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교동 566]
시대 조선
집필자 배재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398년(태조 7)연표보기 - 고사음곡에 삼척향교 건립
이전 시기/일시 1407년(태종 7) - 삼척향교 옥서동으로 이전
이전 시기/일시 1468년(세조 14) - 삼척향교 교동으로 이전
이전 시기/일시 1683년(숙종 9) - 삼척향교 건지로로 이전
이전 시기/일시 1701년(숙종 27) - 삼척향교 교동으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1월 17일연표보기 - 삼척향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삼척향교 강원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삼척향교 - 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교동 566]지도보기
성격 향교|교육기관
양식 대성전-초익공|홑처마|맞배지붕|명륜당-2층 누각|초익공|겹처마|맞배지붕
정면 칸수 대성전 5칸, 명륜당 7칸
측면 칸수 대성전 2칸, 명륜당 1칸
소유자 향교재단
관리자 향교재단
문화재 지정번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정의]

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

[개설]

조선시대 향교는 통치 이념인 유교를 민간에 보급시키고 유교 교양을 갖춘 인재 양성 관학이었다. 이러한 향교는 제향 기능과 교육 기능을 겸비하여 전학후묘 구조를 갖추었다.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선현 봉사 공간이고, 명륜당과 동재·서재는 교육 공간이다.

이처럼 향교는 순수한 유학을 교육하는 중등 교육 기관으로서 무상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아울러 교화 기능도 있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관학 쇠퇴와 사학 발달로 교육 기능은 점차 약화되고 제향 기능이 강조되어 갔다. 이에 따라 조선 후기 향교는 교육보다 제례 기능을 통한 교화 활동과 양반 사족의 모임 장소요, 공론 소재지로서 정치·사회 기능이 더 중요시되었다.

삼척향교는 1398년에 처음 건립된 이후 여러 번의 이건(移建), 중건,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삼척향교는 전학후묘·전당후재의 건물 배치를 형성하고 있다.

[위치]

삼척향교는 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삼척향교는 1398년(태조 7)에 고사음곡(古寺音谷), 즉 지금의 고사리재 동쪽 기슭에 처음 건립되었다. 1407년(태종 7)에 옥서동[현재 당저리 월계동]으로 이전하였다가 1468년(세조 14)에 현 위치로 다시 이전하였다. 이후 수차례의 중수가 이루어졌고 1985년 1월 17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현재 삼척향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정면 7칸 측면 1칸의 명륜당을 비롯한 총 15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홍살문을 지나 향교 전면에 이르면 담장 없는 명륜당이 바로 외곽에 면하고 있다. 그 동쪽에 외삼문(外三門) 역할을 대신하는 단칸의 사주문(四柱門)이 자리하고 있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숙청재(肅淸齋), 왼쪽에 명륜당(明倫堂), 오른쪽에 직청(直廳)이 있다. 숙청재 후면에는 장경실(藏經室)이 자리하고 있지만 장경실은 원래 동재 북쪽에 있었다.

왼쪽의 명륜당을 따라 강학 영역으로 들어가면 좌우에 동재(東齋)·서재(西齋)가 있고, 중앙에 내삼문(內三門)이 보인다. 서재 남쪽으로는 화장실과 협문이 있다. 화장실과 협문은 내삼문을 중심으로 단 차이가 난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좌우에 동무(東廡)·서무(西廡)가 있고 중앙에 대성전이 놓여 있으며, 동·서무와 남측 기단선을 이어 단이 형성되고 그 중앙에 두 개의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면 동·서무와 같은 높이가 된다. 대성전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계단을 하나 더 올라야 한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보면 앞의 중앙 마당이 월대(月臺)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제향 공간은 후면의 구릉지로 인하여 경사가 조금 있는 편이다.

전체를 조망하여 보면 삼척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을 남북으로 잇는 종축, 장경실과 숙청재 공간을 잇는 축 등 두 개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교육 공간이 앞에 있고 선현 봉사 공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조이며, 양재(兩齋)가 명륜당 후면에 위치한 전당후재(前堂後齋)의 배치를 하고 있다. 향교 밖에는 홍살문과 비석들이 있다.

[현황]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 사무국장 1명,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삼척향교는 지역에서 유교를 보급시키고 유교 교양을 갖춘 인재 양성 역할을 다하였다. 이와 함께 삼척향교는 지역 양반 사족의 정치·사회 활동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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