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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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도경동 지역은 이웃의 다른 마을보다 지세(地勢)[땅의 모양]가 높은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본래 돈경(敦境), 도든지경, 된경 등으로 불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구무바우를 합하여 도경(桃京)이라 하였다. 달곡, 궁검곡, 다악곡, 천곡, 혈암동 등은 등봉동에 소속되었으나 1905년에 통합되었다. 강원도 삼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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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삼척김씨(三陟金氏)는 신라대보공(大輔公)김알지(金閼智)를 원조로 하여 신라 제56대 경순대왕(敬順大王)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삼척군(三陟君)에 책봉(冊封)되어 관향(貫鄕)을 삼척(三陟)으로 하였으며, 김추(金錘)는 김알지(金閼智)의 29세손이다. 삼척(三陟)의 옛이름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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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삼척진씨(三陟陳氏) 시조 진경(陳鏡)은 고려태조 때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시중(侍中), 상서(尙書), 태보(太保) 등을 역임하고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다. 진경의 선대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다. 진경(陳鏡)의 16세손 진의(陳懿)는 고려시대인 1296년(충렬왕 2) 삼척군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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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에서 은거한 문관. 신보은(辛輔殷)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호는 백주(白洲)이다. 문정공신당계(辛唐系)의 후손이다. 신보은은 1484년(성종 15)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와 창녕부사를 지냈다. 연산군 당시 무오사화로 말미암아 벼슬에서 물러나와 삼척의 죽동(竹洞)에 내려와 살면서 개간하여 농사에 전념하였다. 늙어서는 누대(樓臺)에 오르는 등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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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자원동에 있는 연산군의 딸 복억의 태실묘. 강원도 삼척시 자원동 태봉산에 있는 연산군 왕녀 복억(福億)[1499~?]의 태장을 묻은 묘이다. 예전에 이곳에 태실이 있었다는 말이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현장 조사를 통하여 태실묘(胎室墓)와 묘비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연산군의 재위 기간은 1494~1506년이며,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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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임원리의 명칭은 조선시대 여행자 숙소인 만년원(萬年院)의 소재지로서 임원리(臨院里)라고 일컫는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 연산군 때 장유현이 울진에서 이주하고 나중에 정씨, 조씨, 이씨, 김씨, 박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173호 897명, 1962년 448호 2475명,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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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자원동은 자원과 평전을 묶어 진평(陳坪)이라 불러왔으나 자원동의 토질이 자적색(紫赤色)인 이유로 자지전(紫芝田) 또는 자지리(紫芝里)로 부르기도 하였다. 1987년 1월 1일에 자원동(紫園洞)으로 개칭하였다. 자원동은 조선 초기에 관청을 짓기 위해 성내리에 살고 있던 진(陳)씨 일가가 이주하여 정착했기 때문에 진평(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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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조비동은 본래 명성곡(明星谷)으로 불러오다 1759년 사비리(沙飛里)로 개명되었고 그 후 조비리(鳥飛里)가 되었다. 조선 연산군 때 박(朴)씨, 김(金)씨가 개척하였다고 하며, 선조 때 김일생(金一生), 숙종 때 진(陣)씨, 김(金)씨가 이주해왔다. 강원도 삼척시 조비동은 서쪽에 성굴산, 북쪽에 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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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자원동에 있는 산. 태봉산은 솔모산 능선과 연결된 산으로 오십천의 공격사면에 해당된다. 연산군의 공주 복억공주의 태실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태봉산(胎峰山)이라는 명칭의 산이 많은데 대부분 왕가의 태실(胎室)이 봉안된 연유로 자연스럽게 명명되는 경우가 많다. 강원도 삼척 지역의 태봉산 역시 연산군의 소생인 복억공주의 태를 묻은 산이라는 데서 지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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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에는 오십천을 건너는 곳이 위, 아래 두 곳이 있다. 위쪽에 있는 곳을 속어로 ‘웃 그는 나들이’, 아래쪽에 있는 곳을 ‘아래 그는 나들이’라 하다가 이것이 와전되어 거노리(巨老里)가 되었다. 그 가운데 ‘아래에 있는 거노리’라 하여 하거노리(下巨老里)라 하였다. 조선 연산군 때 정태호(鄭泰浩), 숙종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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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상정리와 하정리는 본래 통칭하여 소골[소곡(沼谷)]이라 불렀다. 이는 이 지역이 오십천 유역에 위치하여 골짜기가 협소하고 물이 깊었기 때문이다. 점차 위·아래 지역을 구분하여 웃소골[상소(上沼)]와 아래소골[하소(下沼)]로 부르다가 한자로 와전되어 상정(上鼎), 하정(下鼎)이 되었다. 일설에는 쇠솥[철정(鐵鼎)]을 제조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