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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58
한자 三陟鄕校孔夫子廟庭碑
영어공식명칭 Samcheok Hyanggyo Mounment of Kong Fuzi Confucion Academ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교동 56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76년 7월연표보기 - 삼척향교 공부자 묘정비 건립
현 소재지 삼척향교 공부자 묘정비 - 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 지도보기
성격 묘정비
관련 인물 공자
재질 화강암|대리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215.5(159.5)㎝×60.7㎝×27.0㎝
소유자 삼척향교
관리자 삼척향교

[정의]

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에 있는 삼척향교의 내력을 기록하여 세운 비.

[개설]

삼척향교 공부자 묘정비(三陟鄕校孔夫子廟庭碑)는 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삼척향교에서 앞쪽에 위치하며, 삼척향교의 내력을 기록하여 1976년 7월 향교 앞에 세운 비석이다.

묘정비는 보통 조선시대에 여러 지역에서 운영된 서원 앞에 세웠기 때문에 일명 ‘서원비(書院碑)’라고도 한다. 서원의 건립 취지와 그 서원의 주인, 곧 주벽(主壁)으로 모시는 인물에 대한 추앙의 문장 등이 적혀 있다. 대부분 당대의 인망이 높은 인사의 글을 받아 명필의 글씨로 새긴다. 묘정에는 본래 천자(天子)가 군신(群臣)을 모이게 하는 곳으로서 ‘묘정(廟廷)’과 같은 뜻이 있으며, 묘(廟)는 선조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집을 일컫는다. 이에 따라서 묘라 하면 묘원 또는 묘당을 대표하게 되었다. 묘는 공평한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사사로운 것에 반대되는 뜻도 있어 대체로 공과 사 개념으로 볼 때 공을 내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서원이 선비들의 강학하는 곳으로 국한되지 않고 현인을 모시고 제사 지내면서 그 현인을 추앙하는 묘원의 성격을 곁들이고 있는 동시에 묘당으로서의 권위가 묘, 곧 향교와 대등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세우는 비를 묘정비라 하여 격을 높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치]

삼척향교 공부자 묘정비는 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삼척향교(三陟鄕校)[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2호]에서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삼척향교 공부자 묘정비는 이수(螭首), 비신(碑身), 귀부(龜趺)를 모두 갖춘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전형을 그대로 모방하여 만들어졌다. 비의 크기는 높이 215.5[159.5]㎝×너비 60.7㎝×두께 27.0㎝이다.

[금석문]

삼척향교 공부자 묘정비의 앞면에는 전서체(篆書體)로 ‘공부자묘정비(孔夫子廟庭碑)’ 라고 쓴 제액(題額) 아래에 공자(孔子)[기원전 551~기원전 479]의 학덕이 매우 넓고 밝을 뿐만 아니라 공명정대하고, 그의 도는 오래도록 향기롭고 구원(久遠)할수록 더욱 빛난다고 칭송하는 중국당나라 시인 피일휴(皮日休)[834~883]의 글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양준모(梁俊模)가 오랜 전통의 삼척향교에 묘정비(廟庭碑)가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고 사재를 출연하여 비석을 세우게 된 내력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글이 적혀 있다. 왼쪽면에는 삼척 유림들이 묘정비를 세운 일을 공경하여 축하하다는 간단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비문은 성균관장 성락서(成樂緖)가 짓고 성균전의 심상순(沈相洵)이 썼다.

[의의와 평가]

삼척 향교 공부자 묘정비는 비록 1976년에 건립되었지만 전통이 오래된 삼척향교의 내력과 위상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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