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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035
한자 先史
영어공식명칭 Prehistoric Period
이칭/별칭 선사시대(先史時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선사
집필자 이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8년 - 삼척시, 청동기시대 석기 유물이 채집되어 보고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9년 - 삼척시, 구석기시대 뗀석기가 발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1년 - 삼척시, 철기시대 유물들이 출토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삼척시, 신석기 시대 유물이 수습
청동기 시대 기반식 고인돌 분포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노경리 지도보기
청동기 전기 유적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지도보기
청동기 후기 유적 - 강원도 삼척시 갈천동 지도보기
청동기 제의·의례 유적 - 강원도 삼척시 성남동 지도보기
철기 유적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 지도보기
철기 유적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지도보기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문헌 사료 등 문자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의 역사.

[개설]

선사시대는 문자 기록이 없는 시대로, 역사시대와 대칭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까지 포괄하는 시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도구를 제작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단계에서부터 농경이나 목축 또는 토기 제작이 시작되기 이전까지 문화 단계로, 고인류가 등장하는 약 250만~1만 년 전까지를 말한다. 지질학상으로 신생대 제4기 갱신세(更新世)[플라이스토세(Pleistocene世)], 홍적세(洪績世)]에 해당한다. 이 시대에는 돌을 깨뜨리거나 떼어서 만든 뗀석기[타제석기(打製石器)]가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석기의 전체 형태나 가공 기술 정도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신석기시대는 후빙기(後氷期)의 새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인류 문화가 비약 발전하게 된 시기를 말한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쯤 되면 기후는 지구 전반이 온난다습하게 되어 양극 지방의 두꺼운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동식물 상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렇듯 변화된 자연환경 속에서 인류는 구석기시대의 수렵, 채집 경제를 벗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원시 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 생산을 하고, 흙을 빚어 구운 여러 형태의 토기로 요리와 저장 수단을 개발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또 돌을 갈아 만든 다양한 간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를 사용하고, 직조(織造) 기술을 개발하는 등 인류 문화 발달사에서 혁명의 전기(轉機)를 이룩하게 되었다.

청동기시대는 인류가 오랜 기간 사용하여 온 간석기 대신 구리에 비소, 주석을 합금하여 만든 청동기(靑銅器)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문명사회로 접어들게 된 시기이다. 우리나라는 신석기시대 말기인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의 랴오닝 지역, 러시아의 아무르강과 연해주 지역에서 들어온 덧띠새김무늬토기[돌대문토기(突帶文土器) 또는 각대돌대문토기(刻目突帶文土器)]가 앞선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櫛文土器)] 문화와 약 500년 동안 공존하다가 점차 청동기시대로 넘어간다. 이때가 기원전 2000~1500년경으로,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본격화되는 시기다. 고인돌[지석묘(支石墓)]도 이 무렵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한반도의 토착 사회를 이루게 된다. 금속 재료로 만든 청동기는 신분 상징을 나타내는 도구로 소수의 유력자에 한정되어 무기나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다. 생활 도구로는 주로 간석기, 목기, 골각기가 이용되었다.

철기시대는 한반도에서 청동기 제작이 본격화된 기원전 3세기 말경 중국 북방으로부터 새로운 문화, 즉 철기 문화가 들어옴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300년경부터 기원후 300년까지의 약 600년 동안에 해당된다. 그러나 청동기시대 후기와 겹치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기원 전후까지를 초기철기시대, 기원 전후부터 기원후 300년까지를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초기철기시대는 청동기시대 후기에 중국으로부터 철제품이 들어오면서 철기의 현지 생산이 시작되는 시기로, 단단하고 예리한 철의 특성으로 인해 다양한 종류의 무기류와 농공구류가 만들어졌다. 특히 철제 농기구의 보급은 대규모 농경을 가능케 하여 생산력을 급속히 증대시키는 등 변혁을 가져왔다. 철의 제조 공정을 수행하는 전문 집단이 생겨나고, 철이 부(富)의 척도가 되는 등 사회 계급 분화를 촉진하기도 하였다. 또 철제 무기의 출현과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이 막강한 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삼척의 선사문화]

강원도 영동 남부 지역에 위치하는 삼척 지역은 동해 바다와 크고 작은 하천, 울창한 산림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지리 환경 및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선사시대 때부터 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으로 이용하며 정착 생활을 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의 선사고고학 조사를 통해 명확히 밝혀지게 되었다. 즉 일제강점기에 원덕읍 호산리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간돌화살촉[마제석촉(磨製石鏃)] 한 점을 1938년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처음으로 소개한 이후 1960~1980년 정상동봉황산, 교동 뒷산, 월암산, 남양동남산, 성남동, 근덕면 장호리, 원덕읍 월천리 일대에서 돌검[석검(石劍)]을 비롯한 돌창[석창(石槍)]·돌도끼[석부(石斧)]·돌끌[석착(石鑿)]·돌화살촉[석촉(石鏃)] 등 청동기시대 석기 유물이 채집되어 보고되면서 미약하게나마 선사 문화의 존재성이 알려졌다. 그 후 199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따금씩 진행된 고고학 조사에 힘입어 다수의 선사시대 유적, 유물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구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선사 유적의 분포수는 다소 많은 30여 곳에 이른다. 그러나 정식으로 발굴 조사된 유적 수는 영동지방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이에 따라서 강원도영동지방과 동일한 자연·지리 환경에 속해 있는 삼척의 위치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고고학 조사가 지속 진행되면 구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선사 유적이 더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이들 유적에 대한 활발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어 상당수의 고고(考古) 자료가 축적된다면 삼척 지역의 선사문화 실상이 자세하게 밝혀지게 될 것이다.

[구석기 시대]

삼척 지역의 구석기시대 유적은 주로 바다와 접한 해안단구면과 하천 유역의 구릉인 하안단구상에 분포하고 있다. 1999년 원덕읍 산양리[축천리의 현 이름]의 구릉 단구면에서 주먹도끼와 양면찍개 등 여러 점의 뗀석기가 삼척 지역에서 발견되어 구석기문화의 존재성이 처음 알려졌다. 그 후 증산동, 갈천동, 옥원리 일대에서 새로운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고 조사되면서 삼척 지역의 구석기문화 기원이 중기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수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후기구석기 문화층과 석기 제작 행위가 일부분 확인되기도 하였다. 최근 동해안 구석기 유적 발굴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이 지역에서도 더 많은 구석기시대 유적, 유물이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

[신석기 시대]

삼척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대개 바다와 인접한 해안 사구(砂丘)지대에서 발견되고 있다. 2009년 증산동유적에서 결합식낚시, 돌도끼 등 단편에 그친 유물이 수습되어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신석기문화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후 증산-추암 간 도시계획도로 부지 내 유적 발굴 조사를 통하여 평면 원형과 방형의 주거지 3기와 야외 화덕자리[노지(爐址)] 33기, 수혈유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삼척 지역에서 최초로 발굴·조사된 신석기시대 유적에 해당된다. 출토된 유물로는 신석기시대 중기~후기에 해당하는 단사집선문(短斜集線紋), 능형집선문(菱形集線文), 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 등 남해안식 태선침선기법(太線沈線技法)의 영향을 받은 토기류와 단선문 계열의 토기류가 있다. 수렵·어로용 석기인 돌화살촉과 어망추[그물이 물에 가라앉게 하는 도구], 채집·가공류 석기인 돌도끼·돌칼[석도(石刀)]·갈판[연석(碾石)]·갈돌[석봉(石棒)]·긁개[소기(搔器)]와 격지[박편(剝片)] 등 뗀석기류도 있다. 이와 같이 삼척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조사 사례가 매우 적어서 신석기시대 문화의 기원과 전개 양상 등 그 상세한 모습을 살필 수는 없지만 영동지방에서 지금까지 발견되고 조사된 많은 수의 신석기시대 유적이 대부분 하천이나 호숫가, 동해와 만나는 사구지대에 집중 입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삼척 지역의 대·소 하천 하류역에 형성된 사구지대나 주변의 나지막한 구릉에서 신석기시대와 관련된 생활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 시대]

삼척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은 주로 하천 유역의 낮은 구릉에 집중 분포하고, 해안사구에서도 일부 발견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유적들은 크게 주거지, 유물산포지(遺物散布地), 고인돌, 의례[제의] 유적으로 구분된다. 고인돌의 경우 원덕읍 노경리에 기반식 고인돌[기반식 지석묘(碁盤式支石墓)]이 분포하고 있다. 생활 유적으로 추정되는 대다수의 유물산포지에서는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간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최근 후기문화 단계에 속하는 갈천동 유적에서는 주거지 2기가 최초로 발굴되었고, 덧띠토기[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및 돌도끼가 일부 출토되었다. 또 호산리 유적에서는 전기문화 단계에 속하는 평면 장방형의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고, 골아가리토기[구순각목토기(口脣刻目土器)]·구멍무늬토기[공렬토기(孔列土器)] 등 민무늬토기를 비롯하여 돌창·돌도끼·갈판돌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성남동 유적에서는 강원 지방 최초로 제의(祭儀) 또는 의례(儀禮)와 깊이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적석유구 2기, 환구 8기, 구상유구 11기, 수혈유구 15기 등이 확인되었다. 앞으로 이 지역의 주요 하천변과 낮은 구릉지대에 흩어져서 분포하고 있는 다수의 청동기시대 유적들은 발굴조사가 본격화되면 청동기시대 조기~후기 단계의 문화 양상과 성격이 분명히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철기 시대]

삼척 지역의 철기시대 유적은 주로 하천의 하류역과 바다가 인접한 사구지대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하맹방리 유적은 2001년 발굴 조사가 일부 이루어져 철기시대 여(呂)자형 집자리 1기가 처음으로 확인되고, 경질민무늬토기[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와 두들긴무늬토기[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 등이 출토되었다. 또 최근 호산리 유적에서도 장방형 및 철(凸)자형 주거지 4기가 확인되고, 경질민무늬토기·두들긴무늬토기·방추차[실을 뽑을 때 사용하는 도구]·어망추 등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호산리 유적 주거지에서는 신라계 토기가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 전개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철기시대 문화 양상은 이른바 ‘중도유형문화(中島類型文化)’로 인식되고 있는 영동지방의 동예[예족] 문화 양상과 거의 같은 것이다. 이 지역의 주요 하천 유역 주변에 있는 사구지대에 철기시대 취락이 대규모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앞으로 이들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가 적극 이루어져서 상당한 자료가 축적될 경우 삼국 형성 이전에 삼척을 중심으로 형성·발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동예 사회의 일원인 실직국(悉直國)의 실체와 문화 양상이 밝혀질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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