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양주문화대전 > 양주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전통시대 >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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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일대에 있던 마한에 속한 소국.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는 삼한에 대한 소개와 함께 마한의 소국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마한 54개국은 현재의 경기도·충청도·전라도에 분포하였으며, 모수국은 이 중 하나이다. 모수국은 임진강과 한강을 이용하고, 갈립산에서 출토되는 옥을 무역하면서 세력을 유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수국의 명칭은 『삼국지』 위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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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한강 유역을 점령했던 국가. 백제와 고구려가 양주 지역을 놓고 대치하기 시작한 것은 대방(帶方)[경기도 북부 및 황해도 일원]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백제를 건국한 온조(溫祚) 집단이 고구려에서 나왔으므로 두 나라는 건국의 연원이 같은 형제국일 수도 있었지만, 대방 고지를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고, 백제가 북방으로 진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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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속했던 한성에 도읍했던 국가. 고조선 멸망 이후 양주 지역은 마한의 영역에 속하였다. 마한은 54개국으로 구성된 연맹체였으므로 이 중 양주 지역을 차지한 나라가 어느 나라였는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명 탐색을 통하여 양주 지역이 마한의 고리국(古離國)이었다고 비정한 이병도(李丙燾)의 학설이 그동안 주목되었으나 근래에 이르러 『삼국지(三國志)』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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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한강 유역을 점령했던 국가. 신라는 법흥왕[재위 514~540] 대에 이르러 불교를 공인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내부의 결속을 확고히 다진 결과 진흥왕 대에는 소백산맥 지역의 고구려 세력을 축출하고 북으로 영토를 넓혀 함흥·평양 일대를 장악하였다. 이어 영서 일대의 말갈을 추격하며 북상하여 한강을 따라 남하하며 한강 유역을 장악할 태세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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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존재한 지방 세력. 호족(豪族)은 통일 신라 말기의 혼란스런 정국 속에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지방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여 지방 사회에서 지역에 대한 일정한 행정적·경제적·군사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던 독자적인 지방 세력으로 사회 변동을 주도한 지배 세력이었다. 호족은 대체로 낙향한 귀족 세력, 지방의 군진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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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지금의 경기도 양주시 일대에 설치한 행정 구역. 신라 경덕왕 대에 한강 주변 지역을 한산군으로 편제하여 다스렸는데, 양주(楊州) 지역도 여기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898년 왕건(王建)에 의해 양주와 견주(見州)가 정벌되면서 궁예(弓裔)의 세력 아래에 속하게 되었고, 고려 건국 이후 한강과 임진강 일대에 해당하는 양주는 요충지로 인정받았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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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군. 757년(경덕왕 16) 12월 신라는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고 지방 행정을 9주 5소경으로 재편하였다. 759년에는 관제 역시 중국식으로 개혁하였다. 757년 고구려 지배하에 있던 한산주(漢山州)를 한주(漢州)로 고치면서 1주, 1소경, 27군, 46현을 거느리게 하였다. 내소군(來蘇郡)은 이 가운데 하나로 고구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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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고구려의 군. 본래 지금의 양주시 일대는 고구려에 속하였다가 백제 근초고왕이 취한 이후 백제 군현으로 편제되었다. 그러나 다시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다시 고구려 군현이 되었다. 특히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7 지리지에서는 매성군이라 칭하고 있으나 같은 지역을 놓고 『삼국사기』 권35 지리2 신라 한주 내소군조 및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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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를 포함한 한강 유역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구려와 신라의 군. 고구려는 장수왕의 남진 이래 한강 유역을 다시 개척하면서 양주를 포함한 지역에 한산군(漢山郡)을 두어 관할토록 하였다. 그런데 551년 신라와 백제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이 지역은 신라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후에 북한산주, 다시 한산주로 바뀌었다가 755년(경덕왕 14)에는 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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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현재의 동두천시 지역에 있던 고구려의 현. 475년(장수왕 63) 고구려의 장수왕은 남진 정책을 추진한 결과 백제 도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이후 고구려는 한강 유역과 양주 일대에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고, 양주를 그 치소로 삼았다. 내을매현(內乙買縣)은 이때 설치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35, 잡지4 지리2 신라 한주 견성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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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현. 사천현(沙川縣)은 양주시 은현면과 동두천시 일대에 있던 현으로, 본래 내을매현(內乙買縣), 즉 ‘냇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한자로 다시 바꾼 명칭이다. 757년(경덕왕 16)에 군현 제도와 관련,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지방 행정 조직을 기본적으로 9주 5소경 체제하에 재편한 것이다. 이때 양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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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현. 중성현(重城縣)은 통일 신라 시대에 경덕왕이 지금의 양주시 남면 일대를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현이다. 본래는 고구려의 칠중현(七重縣)이었으나 진흥왕 대 한강 유역 점령 후 한주(漢州)가 설치되면서 이에 속하였고 후에 내소군(來蘇郡)의 두 영현 중 하나가 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35, 잡지4 지리2 신라 한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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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일대에 있던 고구려의 성이자 행정 구역. 백제 근초고왕 이전 시기 고구려는 경기도 양주시를 포함하는 한강 유역에 진출하기 위해 남평양성을 두었다. 그러나 근초고왕이 고구려를 공략하면서 북한산 일대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으며, 남평양성은 백제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370년(근초고왕 25) 백제가 한성을 공략하면서 별도(別都)로서 남평양성을 두었다. 진흥왕대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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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던 신라 시대의 치소성. 신라 때 새로 정복한 한강 유역 일대 중 양주 지역에 설치한 매초성은 매소천성이라고도 불리며 매성현(買省縣)의 치소성(治所城)이라 여겨진다. 매초성은 『고려사(高麗史)』 태조 8년 9월 조에 매조성장군(買曹城將軍) 능현(能玄)이 사자를 보내 항복을 청해 왔다는 기록으로 보건대 후삼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매조성으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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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적성[지금의 파주시 적성면] 일대에 있던 삼국 시대 산성이자 행정 구역. 칠중성(七重城)은 돌을 이용해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길이는 600m 정도 된다. 백제가 이 지역을 지배했을 당시에는 이곳을 난은별(難隱別)이라 했으며, 475년(장수왕 63) 남진 정책의 성공으로 고구려가 한강 유역 일대의 지배권을 확립한 때에는 낭비성(娘臂城)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