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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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處亮 |
이칭/별칭 | 자회(子晦),북정(北汀),정정(貞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광순 |
출생 시기/일시 | 1607년 - 홍처량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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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30년 - 진사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37년 - 정시문과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37년 - 봉교, 정언 |
활동 시기/일시 | 1642년 - 진하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643년 - 예조 정랑 |
활동 시기/일시 | 1644년 - 해운 판관 |
활동 시기/일시 | 1647년 - 수찬, 헌납, 이조 좌랑, 교서관 서리 |
활동 시기/일시 | 1649년 - 정랑 |
활동 시기/일시 | 1650년 -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 암행어사 |
활동 시기/일시 | 1654년 - 보덕, 사간, 동부승지, 광주 목사, 승지, 대사성 |
활동 시기/일시 | 1656년 - 대사간, 대사성, 예조 참판, 개성부 유수, 대사헌, 이조 판서, 예조 판서 |
활동 시기/일시 | 1668년 - 예조 참판, 개성 유수 |
활동 시기/일시 | 1670년 - 대사헌 |
활동 시기/일시 | 1674년 - 빈전도감 제조 |
활동 시기/일시 | 1676년 - 제학, 좌참찬, 판중추부사 |
몰년 시기/일시 | 1683년 - 홍처량 사망 |
묘소|단소 | 홍처량 묘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감악산로 52번길 23-12[상수리 산55-1]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남양 |
대표 관직 | 판중추부사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회(子晦), 호는 북정(北汀). 고조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홍춘경(洪春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도승지 홍일민(洪逸民), 할아버지는 금산 군수 홍서룡(洪瑞龍)이며, 아버지는 사재감 첨정 홍명현(洪命顯)이다. 어머니는 해주 정씨(海州鄭氏)로 참판에 추증된 정용(鄭鎔)의 딸이다. 부인은 청송 심씨(靑松沈氏)로 충훈부 도사 심정익(沈正翊)의 딸이다. 자녀는 5남 3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홍처량(洪處亮)[1607~1683]은 1630년(인조 8) 진사시에 급제하였고, 1637년(인조 1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교와 정언이 되었다. 1641년(인조 19) 전적, 예조좌랑, 정언을 거쳐 1642년(인조 20) 진하사(進賀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43년(인조 21) 예조 정랑, 이듬해 해운 판관이 되었다. 1646년(인조 24) 중시문과 병과에 급제하고 이듬해부터 수찬, 헌납, 이조좌랑, 교서관 교리, 정랑 등을 지냈다.
1650년(효종 1) 도청(都廳)이 되어 『인조실록(仁祖實錄)』 편찬에 참여하고, 암행어사로도 활동하였다. 이듬해 문학을 겸하던 중, 징부의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1654년(효종 5)부터 보덕, 사간, 동부승지, 광주 목사, 승지, 대사성을 역임하였고, 1656년(효종 7) 대사간에 올랐다. 이후 대사성,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 및 예조판서를 지냈다. 1671년(현종 12)에는 이조 참판 겸 동지경연 춘추관 성균관 사 세자 우부빈객 전의감, 이조판서를 거쳤다.
1674년(현종 15) 현종이 승하하자 빈전도감 제조(殯殿都監提調)로서 대상(大喪)[임금의 장례]를 주관하였다. 1676년(숙종 2) 기로소(耆老所)[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관을 예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에 들어갔으며, 1683년(숙종 9)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북정집(北汀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산55-1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정(貞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