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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261
영어공식명칭 Heo B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56년 12월 9일연표보기 - 허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78년 - 허봉 들불야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80년 5월 15~20일 - 허봉 5.18민주화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80년 5월 20일 - 허봉 계엄군의 대검으로 머리를 찔림
몰년 시기/일시 1980년 5월 20일연표보기 - 허봉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 5월 28일 - 5.18구묘지 안장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활동지 들불야학 -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광천동 지도보기
활동지 전일빌딩245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45[금남로1가 1-1]지도보기
묘소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지도보기
성격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성별
대표 경력 들불야학 학생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허봉[1956~1980]은 1978년부터 전라남도 광주시에 있는 들불야학에 다니고 있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5월 15일부터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였던 허봉은 5월 20일 전일빌딩[지금의 전일빌딩245] 근처에서 계엄군에게 붙잡힌 뒤 대검에 머리를 찔려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허봉은 1978년 박기순이 주축이 되어 전라남도 광주시에 설립한 들불야학에 동생과 함께 다녔다. 들불야학의 학생과 교사들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투사회보』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언론의 역할을 하였다.

허봉은 1980년 5월 15일부터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동생과 함께 동참하였다. 5월 19일에는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황금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 공중전화 부스 앞 시위에서 계엄군과 몸싸움을 벌였다. 5월 20일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에게 잡힌 뒤 대검에 머리를 찔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 원인은 자상(刺傷)[우측 두정골 절상], 타박상[좌측 전두부, 타박열창] 등이다.

5월 20일 아시아자동차[아세아자동차라고도 하며, 1976년 기아자동차에서 인수함] 광주공장 차량 시위에 참여하여 형과 떨어져 있던 허봉의 동생은 그날 저녁 형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동생은 허봉의 친구로부터 형이 전일빌딩[지금의 전일빌딩245] 앞에 죽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일빌딩으로 향했으나 형의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5월 24일 몇 구의 시신이 조선대학교 뒷산에 묻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동생은 그곳에서 온몸이 멍들고 대검에 머리를 찔린 채로 처참하게 사망한 형을 발견하였다. 이후 허봉의 시신은 전라남도청을 거쳐 상무관으로 옮겨졌다. 5월 28일 가족들에게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시신이 묻혀 있으니 확인하라는 연락이 왔다. 가족들은 심하게 부패되어 있는 허봉의 신원을 확인한 뒤 장례를 치렀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62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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