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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1235
한자 眞珠藁
영어공식명칭 Jinjugo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창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69년 - 허균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18년 - 허균 사망
성격
작가 허균

[정의]

조선 후기 허균이 지은 시.

[구성]

「진주고(眞珠藁)」는 허균(許筠)[1569~1618]이 삼척부사 부임 중에 지은 시를 모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2권에 수록되어 있다. 제2권은 「광록고(光祿藁)」, 「진주고(眞珠藁)」, 「태관고(太官藁)」, 「추관록(秋官錄)」, 「병한잡술(病閑雜述)」, 「궁사(宮詞)」, 「화사영시(和思潁詩)」, 「속몽시(續夢詩)」, 「화백시(和白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소부부고』 제2권은 시부로, 시가 지어진 경로에 따라 편목을 묶어 연대순으로 편찬되었다.

[내용]

1607년(선조 40) 삼척부사로 임명받은 허균이 삼척에 도착해서 받은 감회를 표현한 시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자분부차부신(先子分符此府辰)[아버님이 이 부를 맡던 때는 언제런고]

여금사십오회춘(如今四十五回春)[지금 벌써 사십이라 오 년이 지났구려]

중심왕사인수재(重尋往事人誰在)[지난 일 묻자 한들 사람이 누가 있나]

욕방증유적이진(欲訪曾遊跡已陳)[예 놀던 곳 찾으려 해도 자취 이미 묵었는 걸]

사세기구참긍구(嗣世箕裘慚肯構)[전해 온 유업(遺業)은 계승(繼承)이 부끄럽고]

율신빙벽기치린(律身氷檗豈緇磷)[몸을 갖는 지조(志操)야 그 어찌 변하랴]

지준가훈기무추(只遵家訓期毋墜)[다만 가훈을 따라 떨어짐이 없게 할 뿐]

감기명참한이순(敢冀名參漢吏循)[한의 양리(良吏) 서열에 참여하기야 바라리요]

이민쟁칭찰미변(吏民爭稱察眉編)[아전과 백성이 찰미를 다투어 칭송하여]

도좌풍비상흘연(道左豐碑尙屹然)[길가에는 큰 비석이 상기도 우뚝하이]

반조미종전리기(盤錯未終剸利器)[온갖 일에 솜씨 아직 쓰지 못했는데]

옥루하거회군선(玉樓何遽會群仙)[옥루에선 왜 갑자기 군선들을 불렀을꼬]

풍류자한번회핍(風流自恨潘懷乏)[풍류는 반악(潘岳)의 회포 모자라다 안했거니]

청소수반락령현(淸邵誰攀樂令賢)[청고(淸高)함은 어진 악광(樂廣) 뉘라서 따를 건고]

탄복단령준획락(坦腹但令遵畫諾)[이 탄복이야 다만 이전 계획을 따를 뿐]

진주원시아청전(眞珠元是我靑氈)[삼척은 본래부터 우리 집의 세업(世業)인 걸]

[특징]

허균의 선시안(選詩眼)과 비평은 조선시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익히 인정받고 있다. 허균이 살던 조선 중기는 송시(宋詩)에서 당시(唐詩)로 옮겨가던 시기였다. 허균의 시는 이러한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비평의 기준 또한 성당(盛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 시대의 세태 비판과 삼척[당시의 진주]부의 행정 면모를 표현하고 있다.

허균의 부친과 장인도 삼척부사를 지낸 바 있어 허균에게 삼척은 의미가 남다른 지역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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