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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1116
한자 祈雨祭
영어공식명칭 Ritual for rain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강원도 삼척시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개설]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가뭄이 들어 관청 또는 민간에서 마실 물조차 구하기 어려워질 정도로 비가 오지 않으면, 주로 용추·용연·용소·용담 등 ‘용(龍)’ 자(字)가 접두어로 들어간 지명이 있는 곳이나 천제(天祭) 지내는 장소에서 음력 5월~6월경 비오기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이다.

[삼척 지역에서의 기우제 전통]

삼척 지역의 기우제에 대한 기록은 각종 관찬지리지(官撰地理誌)와 함께 사찬지리지(私撰地理誌)인 허목(許穆)『척주지(陟州誌)』[1662], 김종언(金宗彦)『척주지(陟州誌)』[1848년 이후] 등에 실려 있다. 기우제와 관련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영역 안에 있는 두타산사(頭陀山祠)에서 ‘고을 사람이 봄가을에 제사하며 날씨가 가물면 비를 빈다’라고 하였으며, 황지(黃池)에는 ‘관(官)에서 제전(祭田)을 두어서 날씨가 가물면 비를 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허목『척주지』에 따르면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인 우사단(雩祀壇)을 두었다고 하였으며, 토지신과 오곡신을 제사 지낸 사직단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리(里) 단위에서 기우제를 지낸 장소가 있었다. 덕번상(德蕃上)의 소한연(蘇瀚淵)과 회선대(會仙臺), 장생리(長生里)의 대전(大田) 용추(龍湫), 견박곡(見朴谷)의 능파대(凌波臺)에서 가물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특히 장생리의 대전 용추는 냇물이 바위의 깊은 구멍에서 흘러나오는데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날씨가 가물면 여기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 외형이 다음 항목에서 소개하는 한두골 용소와 같은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삼척 지역에서 기우제를 지낸 장소는 매우 많으며, 형태 또한 다양하다. 이와 같은 전통은 최근까지 전승되어 조선시대에 기우제를 지낸 장소에서 1980년대까지 기우제를 지낸 예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삼척 지역에서 비정기적으로 천제(天祭)를 지낸 마을은 도계읍 황조리, 도계읍 신리, 도계읍 늑구리, 가곡면 동활리, 가곡면 풍곡리, 원덕읍 기곡리선의곡, 원덕읍 옥원리, 원덕읍 이천1리 등이다. 이들 마을에서 천신을 모시고 천제를 지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우를 위함이라는 것을 현지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천제를 지내는 장소는 예로부터 기우제를 지낸 예가 매우 많다.

[삼척 한두골 용소에서의 기우제]

삼척 한두골 용소(龍沼)는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의 해갈(解渴)을 위해 기우제를 지냈던 장소이다.

가. 형태

삼척시 노곡면 상반천리의 한두골에는 예전에 15가구 남짓이 살았으나 화전민 이주 정책으로 전부 퇴거하여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한두골로 오르다가 작은 골짜기를 따라 7부~8부 능선까지 오르면 용소가 있다. 용소는 깎아지른 절벽에 동굴 형태로 형성되었으며, 아래로부터 약 7m 위에 있다. 즉 용소는 절벽에 가로 약 3m, 세로 약 1.5m의 둥근 타원형 입구에, 안쪽으로 들어가면 너비 약 3m, 수심 약 1m, 직선 길이 10m의 물이 고여 있다. 이 물이 용소 왼쪽 절벽을 타고 흘러 작은 이끼폭포를 만들었다. 용소 안쪽으로 10m 정도 들어가면 그 아래로 동굴이 계속 이어진다. 직접 탐사를 한 이들에 따르면 300m 정도 물을 따라 들어가면 3단 폭포가 있고, 그 이상은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동굴은 삼척 지역에 많은 석회동굴이다.

예전에는 이 동굴에 오르기 위해 나무로 사다리를 제작하여 용소 아래 절벽에 거치하였지만 지금은 밧줄을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용소 아래에 삼월삼짇날 놀러 가거나 용소 주위에서 산멕이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용소가 있는 바로 아래에는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에 이곳에서 산을 메기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나. 절차 및 진행 순서

한두골 용소 기우제는 현재 행해지고 있지 않아 마을 주민들의 기억을 더듬어 그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마을 주민인 김규혁은 한두골 용소 기우제를 서너 차례 보았다고 한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까지는 기우제를 지냈지만 한국전쟁 이후로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노곡면 내에 ‘용소’라고 불리는 지명은 여럿 있지만 한두골 용소에서만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마실 물조차 구하기 어려워지면 주로 음력 5월~6월에 좋은 날을 받아서 낮에 기우제를 지냈다. 재정 지원은 노곡면에서 하였으며, 제수 준비는 상반천리 주민들이 주도하였다. 제관은 노곡면장을 비롯하여 지역 어른들이 임명되었다. 기우제에는 제관과 함께 마을 사람 20명~30명이 함께 갔다고 한다. 이때 여자들은 참가하지 못하였다.

기우제 과정을 살펴보면, 한두골에서 제수로 올릴 개를 잡아서 개의 머리와 제수를 들고 용소 아래로 가서 제물을 진설한다. 용소 아래에 있는 절벽 아래에서 기우제를 지낸 다음 한두 명이 제수로 바칠 개의 머리를 들고 용소가 있는 절벽 위로 나무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용소 안으로 들어간다. 이때 최대한 안으로 들어가서 개 머리를 멀리 던진다. 멀리 던지기 위해 3m 정도 되는 막대기 끝에 개 머리를 달아 용소 안으로 던지기도 하였다. 멀리 던져야 비가 조금이라도 이르고 많이 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우제를 마치면 한두골과 용소가 갈라지는 곳에 음식 준비를 위한 솥을 걸어놓고 개 머리를 제외한 부분과 제수 등을 펼쳐 놓은 다음 모여서 음복을 하였다고 한다.

기우제를 지낼 때 제수는 개 한 마리, 메와 나물, 술[막걸리] 등을 간단하게 준비하였다고 한다. 이때 준비한 개는 헌식의 의미가 아니라 신(神)을 화나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개 머리를 던지면 나쁜 피가 용소를 더럽히기에 이를 씻어내기 위해 용왕이 비를 내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기우제를 지내면 소나기가 올 때도 있었다고 한다.

기우제의 목적은 비를 기원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시도한 방법은 다양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개를 잡아 개의 피를 뿌리거나, 여자들로 하여금 오줌을 누게 하는 등의 행위를 함으로써 나쁜 것을 씻어내기 위해 비를 내린다고 믿는 유형이 있다. 또 성스러운 길지를 오염시킨 시체가 한발(旱魃)[심한 가뭄]의 원인이라고 여겨 파묘(破墓)하여 시체를 방기하는 유형, 사직단 등에서 농사 관련 신령을 위하면 비를 내려 줄 것이라고 믿는 유형이 있다. 이 밖에 소를 잡아서 천제를 지내 비를 기원하는 유형도 있다. 즉, 비가 내리지 않아 농촌에서 한발(旱魃)의 피해가 극심해지면 삼척 지역에서는 기우제를 천제단에서 지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다양한 기우제 유형 가운데 한두골 용소 기우제는 나쁜 것을 씻어내기 위해 비를 내린다고 믿는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기우제 제물로 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삼척시가곡면 용소, 원덕읍임원리 용굴 등 삼척 지역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 살아 있는 개를 그대로 바친다. 이에 비해 한두골 용소 기우제에서는 개의 머리만을 바치므로 다른 지역 사례와 구별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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