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1073
한자 堆肥生産
영어공식명칭 Compost Production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집필자 김도현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풀이나 나뭇가지 등을 베어서 시비를 위한 거름을 만드는 일.

[개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삼척 지역에서는 농사를 짓기 위한 거름을 마련하기 위하여 1년에 풀을 최대 네 번 벤다.

갈을 꺾은 다음에는 풀씨가 앉기 전과 처서 무렵에 풀을 했다. 삼척을 비롯한 강원도나 경상도에서 풀을 한다고 할 때는 이 풀을 일컫는다. 전자는 재풀이라 하고, 후자는 큰풀이라고 한다. 재풀은 진풀·김장풀·감자풀·썰풀 등이라고 하였고, 큰풀은 갈풀·거름풀·마구풀·퇴비풀·센풀·밟이풀 등이라고 하였다.

[갈풀]

처음에는 논을 삶기 전인 봄에 갈을 꺾는다. 이때는 주로 참나무 잎을 꺾는다. 갈을 꺾는 시기는 지역별로 약간 차이가 있지만 주로 마을 어른이 정한다. 갈 꺾는 날짜가 정해지면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참나무 갈 등을 꺾어 논에 넣고 소로 삶아 갈이 천천히 썩으면서 벼의 거름이 되게 한다. 갈은 생째로 넣기도 하고 말려 넣기도 하였다. 이 풀은 가곡면[가곡면 동활리]이나 도계읍[도계읍 신리]에서 싱기풀이라고도 하는데 품앗이로 하는 게 아니라 갈품을 사서 갈을 꺾는다.

이 갈은 보통 논 마지기[약 660㎡]당 품 1개에 해당하는 양을 집어넣는다. 갈을 꺾을 수 있는 산이 가까이 있느냐 멀리 있느냐에 따라 하루에 한 사람이 짐에서 짐 정도까지 한다. 갈을 꺾기 위해서는 식전 새벽부터 산에 오르기 때문에 일이 힘들어서 품값은 다른 품 값에 비해 두 배 정도 더 받는다. 갈 꺾는 일과 관련되어 작두질을 할 필요는 없으며, 갈 꺾는 작업에서 일정한 기능을 담당하는 소리도 없다.

[재풀]

재풀은 풀씨가 앉기 전인 6, 7월께 집안사람들끼리 밭두렁이나 논두렁의 연한 풀을 해서 밭두렁이나 퇴비장에 재웠다. 비가 오면 이를 뒤적여서 썩게 한 다음 거름으로 사용하였다. 주로 그해 가을에 감자나 배추 등의 재배용 거름으로 사용하였다. 재풀을 하기 위하여 품앗이를 하지는 않았다. 집안사람들끼리 틈나는 대로 풀을 베어와 거름을 만들었다. 이러한 풀을 베기 위해서는 작두를 두 사람이 밟을 필요가 없었다. 혼자 작두를 밟았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여자끼리도 풀을 작두에 먹여서 작두를 발로 밟으며 풀을 썰기도 한다.

[큰풀]

큰풀은 처서 전인 8월께 품앗이로 풀을 했다. 품앗이는 마을 남자들이 모여서 순번을 정하였다. 부자인 경우 머슴이 품앗이에 참여하였고, 품값은 일을 하는 일수에 따라 정확히 계산하였다. 풀꾼들은 산에 올라가 보드라운 풀은 물론 잎이 달린 나무까지 잘라 왔기 때문에 이처럼 풀은 연한 풀만이 아니라 나무도 의미하였다. 풀을 해 온 다음에는 이를 겨리작두로 썰어서 풀가리[퇴비더미]를 만들어 쌓아 둔다.

겨리작두는 쌍작두라고도 한다. 작두날은 하나지만 두 사람이 작두를 밟는다. 혼자 밟으면 굵은 나무는 잘라지지 않기 때문에 둘이 힘을 주어 밟는다. 겨울이 되면 이 풀을 조금씩 꺼내 마구간에 집어 넣어서 소의 똥오줌과 범벅이 되게 한 다음 이를 꺼내 퇴비장에 쌓아 두었다가 봄에 거름으로 밭에 내다 깐다. 이 큰풀은 퇴비를 만드는 역할도 하지만 겨울에 마구에 깔아서 소의 보온을 위한 깔개 역할도 한다. 이 큰풀을 마구풀, 밟이풀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풀은 품앗이로 하지 않지만 큰풀은 품앗이로 한다고 하였다. 품앗이는 7~8명이 어우러져서 한다. 풀을 작두에 먹이는 사람이 1명, 작두에 먹이는 사람과 마주 앉아 풀을 먹이는 사람에게 풀을 놔 주는 사람 1명, 풀꾼들이 지어서 날라 온 풀짐을 끌러 풀을 놔 주는 사람에게 풀을 대 주는 사람이 1명, 작두를 밟는 사람 2명, 작두에서 나오는 풀을 쳐 내는 사람이 1명, 쳐 낸 풀을 풀가리에 쌓아 올리는 사람이 1명 내지 2명이 있다. 이들을 ‘한 작두꾼’ 내지 ‘가진 작두꾼’이라고 한다. 이들 가운데 풀을 먹이는 사람과 풀을 놔 주는 사람은 거의 고정되어 있고, 한 마을에 이 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작두를 밟는 일과 풀가리에 풀을 쌓는 일은 나이가 적고 힘이 센 사람들이 담당하였다. 대체로 연령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하나의 가진 작두꾼을 결성한다. 이 때문에 한 마을에 여러 패가 형성되어 동시에 풀을 하기도 한다.

대체로 품앗이 하는 사람들은 한꺼번에 산에 올라가 풀을 해 온다. 산이 가깝고 먼 정도에 따라 다섯 짐 내지 일곱 짐 정도를 해 온다. 산이 아주 가깝고 나무가 많은 경우에는 열 짐 이상을 해 오기도 한다. 보통은 점심을 먹고 두 짐 정도를 더 해 온 다음 작두를 차려서 풀을 썬다. 이렇게 해서 풀을 썰다가 밤이 늦으면 관솔불을 밝혀서 야간 작업을 하기도 한다.

대농인 경우에는 여러 명의 일꾼을 사서 큰풀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경우 첫 짐에는 풀꾼들이 모두 함께 산에 올라가 풀을 해 온 다음 한 작두꾼이나 두 작두꾼을 선정해서 곧바로 풀을 썰게 하였고, 또 전체 작두꾼이 해 올 풀짐을 계산해서 나머지 풀꾼들이 이를 감당하여야 하였다. 이들 작두꾼 선정은 풀꾼들 자율로 정하였다. 이들 작두꾼에 들지 못하는 경우에는 나머지 풀꾼들이 작두꾼들을 시샘해서 풀짐 사이에 똥을 넣어오는 똥쌈이를 함으로써 작두꾼들을 난처한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하고, 지고 온 풀을 작두 위에 부려 놓는 모테거리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부드러운 풀 속에 억센 나무를 숨겨서 풀이 잘 베어지지 않게 하기도 한다.

풀을 썰기 시작할 때 풀을 작두에 먹이면서 엮는 사람이 “하나 둘 셋” 하고 외치면 이에 맞추어 작두를 밟는 사람들은 작두끈을 높이 들어올리며, 동시에 작두 목침 위에 올려놓은 오른쪽 발을 높이 들어올린다. 그러면 작두에 풀이나 나무를 집어 넣는 사람이 그 풀에 해당하는 엮음을 소리치며 풀이나 나무를 밑부분부터 작두에 집어넣는다. 작두를 밟는 사람은 이를 확인한 다음 작두를 내리밟아 풀을 자른다. 이때 작두를 밟는 사람은 작두에 들어오는 풀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도 하지만 엮어진 상태를 보고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부드러운 풀은 작두를 살살 밟고 억센 나무는 세게 밟는다. 그런데 작두에 집어넣는 부드러운 풀 속에 굵은 나무가 섞여서 들어갈 경우 작두를 밟는 사람은 이를 눈만 통해서 확인할 수가 없다. 이 경우 엮는 사람은 “우러리 쌈 쌓다.”라는 엮음을 통하여 부드러운 풀 속에 억센 나무가 있음을 전달하고, 이를 소리로 확인한 작두를 밟는 사람은 작두를 세게 밟는다.

풀을 먹이는 사람이 풀을 작두에 원활하게 집어넣도록 풀을 놓아 주는 사람은 풀 먹이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풀을 적당하게 갈라 앞풀 뒷꼬리에 적당하게 올려 준다. 그러면 풀을 먹이는 사람은 그 풀을 오른쪽 발등으로 걷어 올리면서 풀을 작두에 집어넣는다. 이때 어떤 사람이 작두에 들어가는 풀꼬리를 밟을 경우 풀을 먹이는 사람의 손이 작두날 사이로 들어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풀을 계속 대 주지 않으면 풀을 먹이는 사람은 “노천이야. 뒷풀이야.”라고 소리를 질러 풀을 빨리 가져오게 한다. 작두에 들어가는 풀이 중단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풀을 대 주는 사람은 풀짐을 풀러 풀을 적당하게 계속 갈라 놓으면서 풀을 놔 주는 사람에게 대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작두 건너에 있는 사람은 작두에서 나오는 풀을 조그마한 막대기로 끊임없이 끌어낸다. 그렇지 않으면 잘린 풀이 도로 넘어와서 풀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게 방해를 하게 된다. 이러한 방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작두 왼쪽에 철사나 끈을 대 놓고 풀이 넘어오지 않도록 하게도 한다. 작두 옆으로 나오는 풀을 긁어내는 사람이 풀을 쳐내면 그 옆에 있는 한 사람은 풀을 가져다가 풀가리를 만든다.

풀썰기가 다 끝난 뒤에는 작두를 고정시키는 볼쇠(쇠기둥)를 뺀 다음 “에후후후”라는 ‘웃소리’를 지르면서 작두를 끌고 마당을 한 바퀴 돈다. 마당을 돌면서 지역에 따라 “삼 올린다.” “마구풀 넣는다.” “풍년 든다.” “송아지 끈다.” “마구 치자.” “개 잡는다.” “소 땄다.” “소 따 몰고 간다.” “소 끌고 가자.” 등과 같은 소리를 지르다가 주인을 마구간에 집어넣고 썬 풀을 마구간에 가득 집어넣기도 한다.

그런 다음 일꾼들이 모여서 밤 늦게까지 술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사시랭이를 하면서 놀기도 하고, 마당에 풀을 펴 놓거나 풀가리에 올라가 씨름을 하기도 하였다.

[주주풀]

재풀이나 진풀을 한 다음에는 오양풀, 괴이풀, 뱅이풀이라고도 하는 ‘주주풀’이라는 풀을 하기도 하였다. 이는 가을에 산에 올라가 억새, 안들미[억새와 비슷하지만 좀 작은 풀], 칡 등과 같은 풀을 캐서 세 가닥으로 묶어 세운 뒤 풀이 파랗게 마르면 집으로 지고 와 풀가리를 해 놓고 이를 조금씩 빼내 소 여물로 사용하기도 하고 마구간에 넣기도 했다.

[의의]

비료가 없을 때는 풀을 해서 퇴비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산보다 논이 많은 강원도 서쪽 변경은 풀을 하지 않았지만 이에 비해 산간지대가 많은 삼척에는 논이 별로 없는 경우 산에서 나는 풀을 거름으로 활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이 과정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각 시기의 필요에 의하여 총 네 번에 걸쳐 퇴비를 만들어야 하였다. 이 과정에서 풀 써는 소리, 노동 공동체 등 다양한 민속이 부수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