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이연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515
한자 李衍宗
영어공식명칭 Lee Yeonj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흥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14년(충숙왕 1) - 이연종 사신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49년(충정왕 1) - 이연종 감찰대부 임명
성격 문관
성별
본관 가리(加利)
대표 관직 감찰대부(監察大夫)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가리(加利)이며, 고려말 문신이다. 사헌규정을 거쳐 공민왕 때 밀직사겸감찰대부를 지냈다.

[가계]

이승휴(李承休)[1224~1300]의 아들이자 이임종(李林宗)의 동생이다.

[활동 사항]

1314년(충숙왕 1)에 사신(史臣)이 되어 호군(護軍) 윤석(尹碩)[?~1348]과 승려 계송(戒松)이 왕에게 여자를 들이는 등 아첨으로 총애를 받아 왕도를 잃었다고 기술하였다. 1321년 사헌규정(司憲糾正)으로 안축(安軸)[1282~1348] 등과 원나라에 가서 과거에 응시하였다. 1349년(충정왕 1)에는 감찰대부(監察大夫)로서 원나라 사신 쌍가(雙哥)를 영접하는 자리에서 원의 공주가 남쪽을 향하고 왕이 동쪽을 향한 것은 예에 어긋난다고 지적해 왕의 위신을 바로하도록 하였다. 1352년(공민왕 즉위년) 밀직사겸감찰대부(密直使兼監察大夫)에 임명되었다. 찬성사 전윤장(全允藏)이 전날 뇌물을 받고 음사(淫祀)를 행한 사실을 들어 탄핵하였으며, 종실의 제군(諸君)들이 하는 일도 없이 녹을 축낸다며 혁파하게 하였다. 또 왕의 호복과 변발을 파하도록 주청하니 왕이 기뻐하고 옷과 요를 하사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비록 위무(威武)도 이연종을 극복하지 못했으니 철석간장(鐵石肝腸)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러나 국내의 실권 수뇌인 기원(奇遠) 일파가 이제현(李齊賢)[1287~1367]·조일신(趙日新)[?~1352] 등의 탄핵을 지원하는 처지여서 이연종을 비웃으며 희롱하니 이연종은 이를 거부하고 “이에 앞서 조익청(曺益淸)[?~1353]을 탄핵하고 또 이들을 탄핵하면 왕이 누구하고 일을 의논하겠는가?” 하고 나이 70이 넘은 것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였다. 그러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한편 왕을 시종한 공을 믿고 횡포한 찬성사 조일신을 감찰집의 김두(金㺩)와 지평 곽충수(郭忠秀)가 탄핵하였다. 이에 조일신은 가노(家奴)의 일을 두고 도리어 대관을 고소하니 왕이 김두 등을 정직시키고 김두·곽충수, 장령 경천흥(慶千興)을 탄핵하여 저지시켰다. 이연종은 다시 조일신이 탄핵당하니 장차 화가 미칠 것을 알고 삼척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조일신의 난 때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학문과 저술]

부친 이승휴의 문집으로, 이연종이 편집한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이 함께 전해진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