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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홍씨 교수공파 종가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506
한자 南陽洪氏敎授公派宗家
영어공식명칭 Namyang Hong Clan Gyosu-gong blood relatives’ head family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일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388년(우왕 14)연표보기 -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삼척 은거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9년 5월 30일 - 홍준의 거소였던 교수당(敎授堂)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
입향지 남양홍씨 입향지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남양홍씨 세거지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상맹방리|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홍천하
입향 시조 홍준

[정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에 있는 남양홍씨 교수공파 종가.

[개설]

고려시대 춘천교수를 지낸 홍준(洪濬)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에 당우를 짓고 우거를 하면서 형성된 남양홍씨 교수공파의 종가이다.

[연원]

남양홍씨 당홍계 삼척 입향조 교수공 홍준은 파시조이다. 홍준은 1388년(고려 우왕 14)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정치적 격변을 피하여 삼척으로 은거하였는데, 교수당(敎授堂)은 홍준의 거소였다. 교수당은 1979년 5월 30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으며, 당내에는 그의 스승인 목은이색(李穡)이 증시한 시판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의 교수당은 1967년 화재로 인하여 남양홍씨 종가집이 소실되면서 건립되었다. 이전의 종가집은 안채가 전면 4칸, 측면 2칸의 겹집으로 좌측에 부엌이 있고 우측에 마루를 깔고 그 사이에 전(田)자로 네 개의 방이 있었다. 안채의 마루 측면은 후원으로 꾸몄으며 그 뒤에는 사당이 있었고, 사랑채 대정의 우측에는 방과 마루로 구성된 해운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맹방리에 있는 해운정(海雲亭)은 1769년(영조 45)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당시 후손 홍계하의 강도소(講道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해운정은 근세 들어 남양홍씨 문중에서 중건하여 관리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홍준은 1388년(고려 우왕 14)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정치적 격변을 피하여 삼척으로 은거하였다.

[현황]

삼척의 남양홍씨 교수공파 종가가 자리한 맹방리는 ‘맹방(孟芳)’ 혹은 ‘매향방(埋香坊)’에서 상고하는데, 고려시대인 1309년(충선왕 원년) 용화회주 미륵의 하강을 기원하기 위해 향목(香木) 250주를 맹방정(孟芳汀)에 파묻었다는 기록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맹방리는 조선 후기 철종 연간에 상·하맹방리로 분리되었고, 1950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분화되기 이전까지 강릉김씨·평택임씨·강릉최씨·삼척김씨 등 다양한 성씨들이 이주해 오기도 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집성촌 자료에 따르면, 당시 상·하맹방리에는 남양홍씨 각각 17호와 39호가 살고 있었으며, 삼척김씨 19호, 강릉김씨 23호가 같은 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남양홍씨 교수공파 종가는 이 마을을 비롯하여 북평[현 동해시 효가동]과 삼척시 미로면 상거노리 등에 산재한 소종친회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고 있다. 특히 입향조 교수공의 음력 10월 초하루 전사[時祭]에는 인근에 사는 종중원들이 모인다.

[관련 유적]

홍준의 거소였던 교수당(敎授堂)이 있으며, 교수당은 1979년 5월 30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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