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405
한자 天恩寺陶窯址-天恩寺瓦窯址
영어공식명칭 Kiln Site and Roof Tile Kiln Site in Cheoneunsa Temple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터
지역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 816[내미로리 78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성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9월 20일~1998년 10월 19일 - 천은사 도요지와 천은사 와요지, 관동대학교 박물관에서 분청사기 가마 발굴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9월 20일~1998년 10월 19일 - 천은사 도요지와 천은사 와요지, 관동대학교 박물관에서 분청사기 가마 발굴조사 종료
소재지 천은사 도요지와 천은사 와요지 -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 816 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천은사 도요지와 천은사 와요지 -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 816 지도보기
성격 가마터
소유자 천은사
관리자 천은사

[정의]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천은사에 있는 가마터.

[개설]

고려 후기의 인근에 살고 있던 이승휴가 삼화사에서 대장경을 빌려 읽었다 하여 간장암(看藏庵)으로 불리기도 한 천은사의 경내에 있는 유적으로, 고려 말 분청사기를 굽던 가마와 조선시대 기와를 굽던 가마를 말한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 816 천은사 경내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8년 9월 20일부터 1998년 10월 19일까지 관동대학교 박물관이 천은사 경내에서 분청사기 가마터를 발굴하였고, 분청사기 편들과 벽체부와 하부 일부가 남은 가마터를 조사하였다.

천은사 도요지는 분청사기를 굽던 가마터로, 천은사 경내에서 동북쪽에 있다. 1988년경 사찰 측에서 진흙을 파다가 분청사기편이 확인되어 가마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1995년 8월경 관동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관동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지표 조사에서 도지미가 붙은 분청사기 일부, 내화토 및 다수의 청자가 함께 붙은 편, 초벌구이를 한 도편 및 소토를 확인하였다. 1997년과 1998년에는 관동대학교 박물관이 시굴 조사와 발굴 조사를 진행하여 유구임을 확인하였다. 가마는 1기였다. 상부의 유구는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으며, 북서-남동 방향의 자연 경사면을 이용하여 시설되어 있었다. 유구는 남북으로 약 320㎝, 동서는 약 440㎝의 장타원 형태로 남아 있었다. 가마의 벽체는 북벽이 약 66㎝인 2~3단만이 남아 있었다. 서벽은 두께 38~54㎝, 높이 38㎝였다. 서벽의 모서리 부분에 남은 석재에 화기가 남은 흔적이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다소 작은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로, 소성실이 1개인 단실요였다. 천장과 벽체부가 남아 있지 않아 가마 외형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등요(登窯)와 같은 지상토축일 가능성이 짙었다. 바닥은 자연 경사면을 이용하면서 약간 다듬은 상태로 조성되었다. 유물은 대부분 입구부와 중앙부에서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대접이었다. 접시, 완, 도지미 등도 다수 출토되었다. 색조는 녹갈색과 담녹색 또는 담청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문양은 일부 연화문을 오목새김[음각(陰刻)]과 돋을새김[양각(陽刻)]으로 새긴 것이 있지만 대부분 문양이 없는 편들이었다. 그릇받침은 내화점토를 이용하였다. 유물 경향은 대체로 잿물치기[시유(施釉)]를 하지 않은 굽에 외면을 연판문으로 장식한 대접과 압출양각한 접시를 기본으로 한 점으로 볼 때 강진가마에서 구운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고려백자로 판단되는 유물도 확인되고 있다. 제작 시기는 12세기로 추정된다. 현재 유물은 현장에 보존되어 있으며, 보호각을 지어 유구와 유물을 보호하고 있다. 강원도 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청자 가마터이다.

기와 가마는 1995년 8월경 관동대학교 박물관이 천은사 일대를 지표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천은사 경내의 불이교 오른쪽 약 50m 지점에 있는 산록 경사면에 있다. 1978년 수로 작업을 할 당시 대부분 파괴되어 현재는 흔적 일부만이 남아 있어 성격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또 하나의 기와가마도 가마의 입구부가 오래전에 파괴되었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전모를 알 수 없는 상태다. 유구의 바닥면에는 숯이 잔존하며, 가마 내부에는 기와와 점토를 겹겹이 쌓은 상태로 잔존하고 있다. 확인이 가능한 가마는 폭 18.5m, 깊이 1.4m이다. 시기는 조선 후기로 판단된다. 평소에는 흐르는 물이 적지만 홍수가 발생하면 계곡에서 흐르는 물에 의하여 기와가마가 있는 유구의 아래쪽 부분이 훼손되는 등 거의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황]

분청사기 가마는 발굴 조사 이후 보호각을 설치하여 현장을 보존하고 있지만 기와 가마터는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있다.

[의의와 평가]

강원도 내에서 최초로 발굴 조사한 분청사기 가마터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