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402
한자 柯谷山烽燧址
영어공식명칭 Beacon Fire Station of Mt. Gagoksa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산104-3
시대 조선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가곡산 봉수지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산104-3 지도보기
성격 봉수
양식 연대형

[정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 소재하고 있는 봉수터.

[개설]

가곡산 봉수는 원덕 해안으로 침투해 오는 적에 대한 방어와 연락 체계를 갖추어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연기를 피우는 방법으로 주요 사항을 전달함으로써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빠르게 알림과 동시에 경비, 통신 수단 역할을 한 중요 국방 시설이 있던 곳이다.

『세종실록』의 「지리지」에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소속 가곡산 봉화(可谷山烽火) 명칭으로 남쪽으로는 울진 긍출도산(蔚珍 亘出道山), 북쪽으로는 임원산(臨院山)에 각각 응한다고 하였다. 이후 편찬된 각종 지지의 내용도 이와 유사하다.

가곡산 봉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통천의 금란성 봉수(金幱城烽燧), 1거 직봉인 회양의 소산 봉수(所山烽燧)와 2거인 영덕대소산 봉수(大所山烽燧), 안동의 봉지산 봉수(烽枝山烽燧)로 연결되는 보조 봉수 역할을 한 총 38기의 간봉과 연결되어 있다. 형태와 기능 면에서 해안 지역에 주로 설치된 연변 봉수로 볼 수 있다.

마을에서 봉화산이라 부르며, 봉수를 봉화대라 부른다. 당시 연변 봉수는 단순한 통신 기능만을 한 것이 아니라 자체 방어와 지역 주민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경보 기능을 함께 수행하였다.

조선 후기에 가곡산 봉수의 기능이 폐지된 이후 마을 주민들이 이곳을 천제당이라 하여 마을 신앙 처소로 이용하고 있다.

[건립 경위]

1446년(세종 28)에는 봉수의 중요성에 비추어 각도 연변 연대의 축조 법식과 중부 봉화의 배설 제도 등이 의정부 건의로 1447년(세종 29) 연변연대조축지식(沿邊煙臺造築之式)과 복리봉화배설지제(腹裏烽火排設之制)가 동시에 마련되어 시행됨으로써 구체화된 연변 봉수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 외적 침입이 자주 발생한 삼척 지역 다섯 곳에 연변연대조축지식과 복리봉화배설지제의 지침을 반영하여 연변 봉수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통신 편의와 해안 방어를 위하여 가곡산에 봉수를 설치하였다.

첫 축조[초축(初築)]는 고려 말~조선 전기로 보인다. 폐지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 삼척 지역에 왜구의 피해가 거의 없었고, 북변에 있는 여진족[만주족]이 삼척 지역까지 침입하지는 않았다는 사실과 『척주선생안(陟州先生案)』에 기록된 삼척부사 류시회(柳時會)[1562~1635]가 재임하고 있던 1626년[병인년]에 영동 지역의 봉대(烽臺)를 폐지하였다는 기록,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삼척의 봉수는 폐지되었다고 한 기록 등을 종합하면 인조 때인 1626년(인조 4)에서 『여지도서』가 편찬된 18세기 중엽 사이로 여겨진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3리 산104-3 일대의 가곡산 가운데 봉화산[84.7m] 봉우리에 위치한다. 동·서·북쪽이 급경사를 이루고 남쪽으로 능선이 이어지며, 동쪽 아래는 바닷가에 위치한다. 갈령에서 산 능선을 타고 동쪽으로 내려가면 가곡산 봉수에 닿을 수 있다. 동쪽은 동해 연안에 접하여 멀리까지 조망이 가능하며, 남쪽과 북쪽으로 울진의 긍[항]출도산 봉수와 원덕의 임원산 봉수가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육안으로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전체로는 평면 형태가 원형으로서 연대 상부에 사각형[방형(方形)]의 연소실을 갖추었다. 남북 장축의 능선상에는 추정 창고지, 추정 건물지, 외곽 석축이 위치하고 있다. 서쪽은 산지이기 때문에 북·동·남의 3면이 잘 조망되는 위치에 있다. 연대의 형태별 구조에서 ‘연대형’으로 볼 수 있으며, 봉수대 건물지의 배치 형식 분석에 따른 분류에서 본다면 비록 방호벽을 발견하지는 못하였지만 산 정상의 평탄지에 연대와 건물이 함께 있는 일곽형으로 볼 수 있다.

[현황]

현재 남아 있는 연대, 창고지, 축대를 중심으로 가곡산 봉수 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대는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이며, 수 년 전의 산불로 인해 붉은색을 띠고 있다. 연대의 남쪽 능선상에서 다른 연소 시설을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영동 지역의 다른 봉수와 같이 단봉으로 볼 수 있다. 연대 윗부분에는 사각형의 연소실 흔적이 남아 있다. 남북 길이 1.9m, 동서 길이 1.9m, 높이 20㎝ 정도이다. 35×19㎝, 24×16×27㎝ 정도의 돌을 이용하여 1단으로 쌓은 흔적이 남아 있다. 연대 중하단부로부터 하단부에 이르는 곳의 석축은 소나무가 자라면서 훼손되는 등 현재 허물어져서 속돌이 많이 노출되어 있다. 동쪽 바닷가와 북쪽으로는 외부 석축용 돌들이 잘 남아 있다. 외부 석축을 위해 주로 27×19×30㎝, 39×18×37㎝, 49×22×26㎝ 정도의 돌들을 이용하여 쌓았다. 연대 곳곳이 훼손되어 드러난 곳에서 보이는 속돌은 16×15㎝, 29×20㎝, 20×17㎝ 정도의 돌들을 주로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오름 시설은 연대 남쪽의 아래 기단부에서 동쪽으로 돌아 상부로 오르게끔 나선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부분에 사용한 돌은 35×34×47㎝, 40×28×30㎝ 크기였다.

연대 하단부에는 기단부의 석축이 보인다. 특히 연대 동남쪽에 잘 남아 있다. 전체로는 연대의 동서 길이 6.8m, 남북 길이 10.0m, 둘레 34.0m, 높이 3.0m 정도 크기이다. 형태 분류상 평면 원형으로 볼 수 있다.

연대 곳곳에는 수마석이 있으며, 이는 대부분의 연변 봉수에서 갖춘 봉수대 비치 물목의 하나이다. 내지 봉수인 진주광제산 봉수, 고성천왕점 봉수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크기는 12.0×10.5×4.5㎝, 10.5×10.0×5.0㎝, 11.5×8.5×4.5㎝이다.

건물지는 연대 하단부 남쪽 방향에 있다. 연대 바로 아래에 동서 길이 8.6m, 남북 길이 2.6m, 높이 20㎝ 정도로 대략 48×14㎝ 및 28×16㎝ 정도 크기의 돌들을 1단으로 쌓은 동서 장축의 직방형 건물지로 추정된다. 건물지 내부에서는 구획선을 찾지 못하였지만 거화 재료 등을 보관한 창고지로 추정된다.

봉수 남쪽으로 평지이다. 남북 방향으로 석축이 가지런하게 쌓아져 있다. 남북 길이 13.6m, 동서 길이 8.7m, 높이 30cm 정도이다. 35×15㎝, 34×14㎝, 43×17㎝ 정도 크기의 돌을 이용하여 1~2단으로 축조한 것이다. 이것이 건물지인지 주변으로 불이 옮아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시설인지 기타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연대의 북서쪽으로부터 서쪽에 이르는 봉우리의 정상 부분에서 급경사를 이루는 경계 지점에는 1~2단의 석축이 만들어져 있다. 주로 40×14㎝, 24×7㎝, 43×25㎝ 정도 크기의 돌들을 사용하였다. 너무 낮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짐승이나 외부의 적으로부터 방어를 위한 시설이라 볼 수는 없다. 봉수대 터가 너무 협소하여 흙이나 돌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이거나 화재 발생 시 차단벽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곡산 봉수 연대의 북쪽 앞에는 간수 단지를 돌무지 사이에 끼워 놓은 흔적이 남아 있다. 간수 단지는 매년 정월 보름과 6월 15일 마을 고사를 지낼 때 정월 보름에 채워 둔 소금물이 마르면 6월 보름 제사 때 다시 채우고, 소금물이 마르면 마을에 화재가 나거나 흉년이 든다고 믿었지만 약 22년 전에 분실하였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일부 파괴된 채 남아 있는 돌무지 형태의 연대를 천제당(天祭堂)이라 하여 매년 정월 보름과 6월 보름에 마을 제사를 지낼 때 이곳에서 천제(天祭)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삼척 지역의 봉수 5곳 가운데 4곳은 연소실이 훼손되었지만 가곡산 봉수에서만 사각형의 연소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가곡산 봉수에서 비치 물품 가운데 하나인 수마석이 발견되고,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으며, 전체로는 그 형태가 대체로 잘 남아 있다는 점에서 동해안 지역의 연변 봉수 연구 및 분석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봉수가 폐지된 이후 간수 단지를 묻어 두고, 천제당이라 하여 마을 제의의 처소로 여겨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장소로 기능한다는 점은 가곡산 봉수가 위치한 월천 마을의 문화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